을사늑약 반대 운동과 신민회·헤이그 특사 파견에 참여한 상동교회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 생몰 | 1875 ~ 1914 |
| 시대 | 개화기~일제강점기 |
| 본관 | 정선 전씨 |
전덕기(全德基, 1875~1914)는 감리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입니다. 본관은 정선입니다.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의 전도로 개신교인이 되어 협성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상동감리교회 전도사로 일했습니다.
을사늑약 때 도끼를 들고 반대 운동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1907년 이회영·이동녕 등과 상동교회에서 신민회를 결성하고, 이준 등과 헤이그 특사 파견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191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동교회는 독립운동가들이 모이던 거점이었고, 전덕기는 이곳을 중심으로 청년 운동과 교육을 이끌었습니다. 1906년 공옥학교 교사로 일했고, 1907년 신민회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2014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정선 전씨 종친회도 신민회를 조직해 배일 운동을 벌인 인물로 그를 소개합니다.
일제가 묘소가 독립운동의 기념처가 될 것을 우려해 묘를 파헤쳐 화장한 뒤 유해를 한강에 뿌렸다고 전합니다. 위패는 국립묘지(현충원) 무후선열 영모각에 모셔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