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임시의정원 초대 의장

| 생몰 | 1869 ~ 194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연안 이씨 |
이동녕(李東寧)은 호가 석오(石吾)로 충청남도 천안 출신이다. 대한제국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활동하다 1897년 이승만·이준 등과 함께 투옥되었으며, 《제국신문》 기자를 지낸 계몽운동가였다. 신민회 결성에도 참여하였다.
1906년 만주 북간도로 망명해 이상설과 함께 국내 최초의 해외 사립학교인 서전서숙을 세웠고, 이상설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로 떠나는 길을 수행하였다. 1910년대에는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를 세워 초대 교장을 맡아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을 맡았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국무령과 주석을 여러 차례 역임하며 김구 등과 함께 정부를 이끌었고, 1932년에는 김구·이유필 등과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지도하였다. 1940년 중국 쓰촨성 치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1948년 9월 김구의 주선으로 유해가 봉환되어 사회장으로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서울 효창공원(1948년 봉환·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