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독립장(1962)

| 생몰 | 1867 ~ 1932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경주 이씨 |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은 호가 우당(友堂)으로, 경주 이씨 백사공파 명문가 출신입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형제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시영·이호영과 함께(6형제) 전 재산을 처분하여 중국 서간도로 망명하였습니다.
1911년 삼원보 일대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이상룡·김창환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습니다. 이후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1923년 신채호·유자명 등과 아나키스트 단체 다물단 결성에 참여하였고, 1924년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결성에도 관여하였습니다.
1932년 상하이에서 만주로 이동하던 중 다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하였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 위키백과, 나무위키
부인 이은숙(건국훈장 애족장, 2018)과 차남 이규학(건국훈장 애족장, 1990)이 모두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습니다. 이규학은 사촌 이규준과 함께 밀정 처단에 가담했고, 셋째 아들 이규창은 친일파 처단 사건으로 붙잡혀 13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 광복과 함께 풀려났습니다.
손자 대에서는 이종찬이 국가정보원장과 광복회장을 지내며 우당 이회영 교육문화재단을 이끌었고, 이종걸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이회영 6형제의 아들들도 독립운동에 나서, 현충원 등에 모셔진 일가가 스무 명이 넘는다고 전합니다.
부인 이은숙과 아들 이규학·이규창이 독립운동에 함께했고, 손자로는 국가정보원장·광복회장을 지낸 이종찬과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걸이 있습니다.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회영·이시영·이호영입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망명했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세웠습니다. 다섯째 이시영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경주 이씨 백사공파로,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후손 집안입니다. 대대로 정승·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습니다.
1932년 상하이에서 만주로 가던 중 다롄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뤼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