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임시정부 · 대한민국장(1949)
| 생몰 | 1869 ~ 195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경주 이씨 |
서울 출신으로 경주 이씨 명문가의 후손이며 대한제국 관료 이유승의 아들이다. 1910년 한일합방 후 형 건영·석영·철영·회영, 아우 소영·호영 등 6형제 가족 50여 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이들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였고, 이는 뒤에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되어 1920년까지 3,500명 이상의 독립군 간부를 배출하였다.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법무총장을 지냈고, 이후 1926년까지 재무총장으로서 자금 조달에 전력하였다.
광복 후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으나, 국민방위군 사건 이후 국정 혼란과 사회 부패에 책임을 통감하며 사퇴하였다. 1953년 4월 17일 부산에서 노환으로 향년 84세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