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학자, 헤이그 특사

| 생몰 | 1870 ~ 191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경주 이씨 |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은 대한제국의 학자·관료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성균관 관장과 의정부 참찬 등을 지낸 유학자로,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며 격렬히 저항하였습니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아 이준·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대한제국의 주권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습니다. 이 일로 국내에서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후 북간도에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워 민족 교육을 폈고, 1910년 연해주에서 한인들을 규합해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하여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선언서를 각국에 발송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해 권업신문 간행과 한인학교 확장을 통해 항일운동의 기반을 넓혔고, 1914년에는 이동휘·이동녕 등과 함께 한일병합 후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추대되었습니다.
1917년 3월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사하기 직전, 동지들에게 조국 광복을 당부하며 자신의 시신과 유품을 모두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