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해 호성공신 3등에 책훈되고 석릉군에 봉해진 후석릉군파의 파조
| 생몰 | 1559 |
| 시대 | 조선 중기(선조) |
| 본관 | 정선 전씨 |
전룡(全龍, 1559~?)은 정선 전씨 42세로 후석릉군파(임하군파)의 파조입니다.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고 종묘의 위패를 모셔 오는 과정에서 왜군에게 크게 다치면서도 임무를 마쳤다고 하며,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3등에 책훈되어 석릉군에 봉해졌습니다.
공신록에는 이항복·정곤수가 1등, 이원익·윤두수·유성룡 등이 2등, 전룡·허준·정탁 등 53명이 3등으로 올라 있고, 종친회는 안동 하회마을 유성룡 댁에서 공신록에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포상으로 2계급 특진과 노비 7명, 토지 60결, 말 1필, 은 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들 전대익은 청송부사·벽동군수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호성공신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모시고 피난한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1604년 내린 훈호로, 86명을 3등으로 나누어 책훈했습니다. 전룡은 3등으로 올랐고 석릉군에 봉해졌습니다. 고려 때의 석릉군 전윤장과 구분하려고 그의 갈래를 후석릉군파(後石陵君派)라 부릅니다.
전룡의 넷째·다섯째 아들이 1592년 임진왜란 중 시흥에서 성주로 이주했다고 종친회는 설명합니다. 무학리 선암 일대는 지금도 후석릉군파의 세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종친회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석릉군 묘역에서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 시제를 지낸다고 소개합니다(2017년 후기).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는 그를 기리는 표충재가 있고, 1936년 의왕 이강이 지은 신도비가 있다고 합니다.
4남 전대붕(어모장군 부호군)과 5남 전대봉(군자감정)이 임진왜란 때 시흥에서 성주로 내려와 입향했고, 무학리 선암(배바위)을 중심으로 400여 년을 세거하며 용암면 중거리·월항면 인촌리·초전면 봉정리로 퍼졌다고 합니다(디지털성주문화대전). 2015년 성주군 일대 거주 약 203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