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전씨의 시조, 고려 의종 때 좌복야·참지정사를 지내고 담양군에 봉해진 문신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담양 전씨 |
전득시(田得時)는 담양 전씨(潭陽 田氏)의 시조로 모셔지는 고려 중기의 문신입니다. 생몰년은 전하지 않으며, 고려 의종(재위 1146~1170) 때 활동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대대로 담양에서 살아온 향리 집안 출신으로 알려지고, 그 이전의 선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계일보 연재 기사는 그가 의종 때 문과로 발탁되어 중서문하성 참지정사를 거쳐 상서군성 좌복야를 지냈고 담양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원(忠元)이라고 전합니다. 나무위키는 그가 현량과에 합격했다고 적지만, 현량과는 조선 중종 때(1519) 시행된 제도여서 고려 의종 때의 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 점은 문중 기록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후손들은 그가 봉해진 담양을 식읍처럼 여겨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시조부터 6세손까지는 대를 독자로 이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기사는 이 기간에 정승급 4명과 봉군 2명이 나왔다고 하여, 손은 귀했지만 벼슬은 높았던 집안으로 설명합니다. 6세손 전희경의 세 아들 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문이 크게 번성했습니다.
세계일보 연재 기사에 따르면 2세 전자존은 추밀원사, 3세 전승윤은 문하시중, 4세 전공일은 평장사, 5세 전영은 첨의중찬, 6세 전희경은 첨의사인을 지냈다고 합니다(나무위키는 전희경을 동지밀직사사로 적습니다). 대를 독자로 이으면서도 여러 정승급 인물이 나왔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고려 때의 관직명과 세대 수는 후대 족보에서 정리한 것이므로, 소속 문중의 족보와 대조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전(田)씨의 먼 뿌리는 중국 춘추시대 진(陳)나라 공자 진완(陳完)이 제(齊)나라에서 전(田) 땅을 받았다는 전승과 이어집니다. 담양 전씨 족보 가운데 임진보 서문은 제나라에서 동래했다고, 갑자보는 제나라 왕실의 후예라고 적습니다. 개성 왕씨에서 갈라졌다는 설도 있고, 선계가 확인되지 않으니 한국 토착 성씨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확정된 설이 아니므로 이 가운데 하나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시조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담양전씨 문중은 해마다 시조 전득시와 삼은 파조를 모시는 대제를 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세 전자존(추밀원사), 3세 전승윤(문하시중), 4세 전공일(평장사), 5세 전영(첨의중찬), 6세 전희경(첨의사인)으로 이어졌다고 전하며, 전희경의 세 아들이 삼은으로 불리는 전녹생·전귀생·전조생입니다. 세대별 관직은 문중 기록에 따라 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고려 의종 때 좌복야·참지정사를 지내고 담양군에 봉해진 전득시입니다.
일부 자료가 그렇게 적지만 현량과는 조선 중종 때의 제도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세계일보 기사는 의종 때 문과로 발탁되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