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삼사좌윤·밀직제학을 지낸 문신, 뇌은공파 파조(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전함)
| 시대 | 고려 말기 |
| 본관 | 담양 전씨 |
전귀생(田貴生)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담양 전씨 6세손 전희경의 둘째 아들이며 뇌은공파(牢隱公派, 뢰은공파)의 파조입니다. 호는 뇌은이고, 삼사좌윤과 밀직제학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개성 두문동에 들어가 조선을 섬기지 않았다고 전하며, 이른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다만 두문동 72현의 명단은 후대에 정리된 것이어서 완전하지 않으며 상징적인 숫자에 가깝다는 연구도 있으므로, 이 점은 '전한다'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뇌은공파에는 정산파·선산파 등 하위 분파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후손으로는 조선 초 예조판서로 연안군에 봉해져 연안 전씨의 시조가 된 전가식, 참찬을 지낸 전무, 한성판윤 전양민, 임진왜란 금산전투에 나선 전임 등이 문중 기록에 오르며, 효자로 알려진 전좌명의 딸은 연안부부인으로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어머니였다고 전합니다.
두문동은 고려가 망할 때 조선을 섬기지 않으려는 신하들이 들어갔다고 전하는 곳입니다. 72현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며 후대에 명단이 만들어졌기에, 개별 인물이 실제로 그곳에 있었는지는 자료마다 설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담양 전씨에서는 전귀생과 전조생이 모두 이 이야기와 이어져 있어 가문의 절의 전통을 보여 주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후손 전가식은 조선 정종 때 예조판서를 지내고 연안군에 봉해졌습니다. 그가 따로 연안을 본관으로 삼으면서 연안 전씨가 갈라져 나갔고, 연안 전씨는 지금도 담양 전씨 대동보에 함께 실립니다. 한 집안이 하나의 본관에서 갈라져 새 본관이 되는 이 과정을 '분적'이라 부릅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산파·선산파 등 하위 분파가 소개되며, 연안 전씨의 시조 전가식도 이 계통으로 전해집니다.
정산파와 선산파 등이 소개됩니다. 자세한 세계는 족보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