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남명의 학문을 아울러 계승한 조선 중기의 대학자, 호는 한강(寒岡)
| 생몰 | 1543 ~ 1620 |
| 시대 | 조선 |
| 본관 | 청주 정씨 |
정구의 호는 한강(寒岡)이며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이황(퇴계)과 조식(남명) 두 대가에게서 모두 성리학을 배워 영남학파의 두 학맥을 아울렀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예학·역사·의약·서예 등 여러 방면에 두루 밝았다.
1573년 예빈시 참봉으로 관직에 나서 창녕현감·동복현감·통천군수·강원도관찰사·성천부사·청주목사·홍주목사·광주목사·안동부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통천군수로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였다. 예학에서는 왕과 사대부의 예가 다르다는 왕사부동례(王士不同禮)를 제기하였고, 향토지와 의서 편찬에도 힘썼다. 1603년 《남명집》 편찬을 둘러싸고 정인홍이 이황·이언적을 배척하자 이를 설득하려다 실패해 절교하였다.
허목·윤휴 등 3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조선 후기 근기남인 학맥의 원류를 이루었다. 저서로 《오선생예설분류》 《심경발휘》 《한강집》 등 50여 종을 남겼으며, 회연서원·천곡서원·도동서원 등 전국 10여 곳의 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