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소 陳泳素

진린의 손자·광동 진씨 조선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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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명말청초·조선 후기(17세기)
본관광동 진씨

생애 약력

진영소(陳泳素)는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의 손자로, 명나라가 망한 뒤 조선으로 건너와 광동 진씨의 뿌리를 내린 입향조입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에 따르면 아버지는 진린의 아들 진구경(陳九經)입니다. 이름의 한자는 자료에 따라 陳泳素 또는 陳泳溸로 적힙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1644년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자 할아버지 진린의 뜻을 좇아 조선으로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진린의 수군 본영이 있었고 진린이 세운 관왕묘가 있던 전라도 고금도(지금의 완도군 고금면)에 머물렀다가, 해남 해리로 옮겨 살았다고 전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가 명나라에서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 벼슬을 버리고 남경에서 배를 타고 와 남해안 장승포에 닿았다가 고금도로 옮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 덕송리 항목은 그를 '1644~?'로 표기하는데, 1644년은 명나라가 망한 해여서 이 숫자가 태어난 해를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 대에 지금의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로 옮겨 명나라 유민이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황조(皇朝)라 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 아들의 이름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의 황조별묘 항목은 진석문(陳碩文)을, 덕송리 항목은 진석권(陳碩權)과 진윤권(陳允權)을 듭니다. 2014년 경향신문 보도에 실린 문중의 설명에서는 건너온 손자의 이름이 조(詔)로 나옵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그는 수군 벼슬을 버리고 광둥에서 배를 타고 고금도에 이르러 그곳 여인과 혼인했고, 망명 16년 만에 열네 살 아들 석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와 진영소가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위패는 할아버지 진린, 아버지 진구경, 아들 진석문과 함께 황조마을 뒷동산의 황조별묘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사당은 1871년(고종 8)에 세워졌으며 해남군 향토문화유적 제10호입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의 해남 세거 성씨 항목도 '진린의 손자인 광동진씨 진영소가 명나라가 망하자 우리나라에 건너와 산이면 황조리에 거주하여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후손

후손이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황조마을에 광동 진씨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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