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일락가」를 지은 시조 시인이자 임진왜란 의병 후원자, 호는 해암
| 생몰 | 1527 ~ 162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도강 김씨 |
김응정(金應鼎, 1527~162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도강입니다. 자는 사화(士和), 호는 해암(懈菴)이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아버지는 예빈시참봉 김한걸, 어머니는 해남 윤씨입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도강 김씨 15세, 시직공파 9세로 소개합니다. 평생 향촌에서 지내며 글을 읽고 시조를 지었고 93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 명종·선조의 상사에 고령의 몸으로 상복을 입고 참례했습니다. 관직이 없는 신분이었지만 『예기』의 예법을 따른 것으로, 이를 아름답게 여긴 전라감사 정철과 최관이 조정에 벼슬을 내려 달라고 청해 경릉참봉과 사헌부지평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는 의병을 모집했고, 토지와 노비를 모두 팔아 군량미 500석을 마련해 의병장 고경명과 조헌을 도왔다고 합니다. 대표작 「서산일락가(西山日落歌)」는 1567년 명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조로, 『해암문집』에는 현존하는 시조 8수가 전하며, 오이건이 쓴 서문에는 그가 지은 노래가 100여 수 이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서산일락가」는 '서산에 해 지니 천지가 어둡다'는 뜻을 담아 임금의 죽음을 애도한 시조로 소개됩니다. 관직에 있지 않았던 한 선비가 임금의 승하를 사사로운 일처럼 슬퍼했다는 점에서, 그의 충과 예를 중시한 삶을 잘 보여 줍니다. 노래의 구체적인 가사는 『해암문집』 판본마다 표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이곳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해암문집』은 1773년 초간본이 간행되었고 1905년 중간본이 널리 쓰인다고 연구서가 설명합니다. 그는 출사를 거절한 채 향촌에서 일생을 보낸 재지 사족의 시조 작가로 평가되며, 강진 지역 문학사에서 먼저 꼽히는 이름입니다.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진 지역에서 기려진 인물입니다.
시직공파 9세로 소개되며, 시직공파는 강진 도암면 석문리 석천마을 일대에 세거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