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의병에 군량을 보낸 태인의 선비, 호는 원모당
| 생몰 | 1540 ~ 162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도강 김씨 |
김후진(金後進, 1540~1620)은 전라도 태인(지금의 전북 정읍시 칠보면) 출신의 선비로, 본관은 도강입니다. 자는 비승(丕承), 호는 원모당(遠慕堂)·사재(思齋)·연담(蓮潭)이며, 시조 김희조의 후손으로 김회련의 후손, 판관공 김희열의 손자로 소개됩니다. 일재 이항의 문인으로 경학과 역학에 밝았고 『가례』『심경』『근사록』 같은 성리서를 연구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귀가 장성에서 일으킨 의병에 참여해 군량을 모아 보냈고, 1593년에는 장정 100여 명을 이끌고 의주까지 가서 선조를 알현하며 곡식 수백 섬을 행재소에 바쳤다고 합니다. 고경명과 민여운의 의병소에도 군량을 보냈고, 무명을 사서 옷을 지어 명나라 군진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공으로 군자감직장에 추증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군기시정에, 고종 때 호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해 각각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는 효행이 전하며, 정읍시 칠보면의 남천사에 배향되었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안내가 붙은 문서이므로 세부 사항은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일재 이항(李恒)은 전라도 태인에서 후학을 길러 호남 성리학의 한 갈래를 연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후진이 그의 문하에서 경학과 역학을 배웠다는 점은 도강 김씨가 태인에서 학문 가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당시 의병은 정부의 보급 없이 지역 선비와 부호의 곡식에 크게 기대었습니다. 김후진처럼 직접 군량을 모아 전선과 임금 곁으로 보낸 이들의 노력이 의병 활동을 이어 가게 한 힘이었다고 평가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