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3·1운동 · 대통령장(1962)
| 생몰 | 1864 ~ 195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해주 오씨 |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서울 출신으로, 중국어 역관이자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였던 아버지 오경석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개화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1879년 역과에 합격하고 1885년 박문국 주사시보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기관인 한성주보의 기자가 되었으며, 을미사변 이후 한때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낭독에 참여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23년 11월 가석방되었습니다. 이후 서예가·전각가이자 서화사·금석학 연구자로 활동하며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1,117명의 서화가를 정리한 《근역서화징》(1928)을 펴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한국 서화사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광복 후에는 매일신보의 사장으로 추대되어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하였다가 1953년 4월 별세하였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