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박씨 시조, 고려 문신, 춘성부원군
| 생몰 | 1227 |
| 시대 | 고려 고종~충렬왕 때 |
| 본관 | 춘천 박씨 |
박항(朴恒)은 춘천 박씨의 시조입니다. 자는 혁지(革之)이고 처음 이름은 박동보(朴東甫)였으며, 춘주(春州, 지금의 춘천)의 주리(州吏) 출신으로 전합니다. 신라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 강남대군 박언지의 11세손이라는 족보 전승이 있습니다. 강원도민일보와 춘천사람들의 기사는 1227년(고종 14) 춘천 신북읍 발산리 장본(옛 맥국 도읍지라 전하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합니다.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에 들어갔다고 하며, 위 기사는 1245년 18세 급제로 적습니다. 충주목사, 경상·전라 안찰사 등을 거쳐 충렬왕 때 동지밀직사에 올랐고, 왕을 호종해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좌명공신에 책록되어 춘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삼중대광 문하찬성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원 세조가 일본 정벌을 위해 군기와 군량을 거둘 때 감독관들의 횡포를 막고자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글솜씨와 외교 능력이 뛰어났다고 전하며 시호는 문의(文懿)로 소개됩니다.
몽골 침입 때 춘천 봉의산에서 부모를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는 시신 300여 구를 묻고 사신으로 중국에 세 번 가서 부모를 찾고 끌려간 유민의 송환을 청했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고향 춘천 율문리 사랑마을에서 지내다 55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묘소는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또는 유포리 무짓골에 있다고 하여 기사마다 다릅니다.
춘주의 주리(州吏) 출신으로, 후손들이 그의 봉호 춘성부원군을 따라 본관을 춘천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경명왕의 아들 박언지의 후손이라는 상계는 문중 전승이며, 반남 박씨처럼 8대군 설을 인정하지 않는 본관도 있습니다.
충렬왕을 호종해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좌명공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정벌 때 군수 징발의 폐단을 상소했다는 이야기는 전승이며 사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춘천사람들 기사는 묘가 뱀 머리 모양 '사두안' 자리이고 앞의 머굴봉이 개구리 모양이라 후손이 높은 벼슬은 못 해도 넉넉하다는 풍수 이야기를 전하며, 아들 박원굉이 두 묏자리 가운데 '백대자손지지'를 택했다고 합니다. 풍수 이야기는 전승입니다.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또는 유포리 무짓골에 있다고 하여 자료마다 다릅니다. 풍수상 '사두안(蛇頭眼)'이라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춘성부원군 박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