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문장가, 북학파의 대표, 호 연암(燕巖)

| 생몰 | 1737 ~ 1805 |
| 시대 | 조선 |
| 본관 | 반남 박씨 |
반남 박씨로 호는 연암(燕巖)이다. 북학파(이용후생 학파)의 영수로,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워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1768년 백탑 근처로 이사한 뒤 박제가·이서구·유득공 등과 이웃하며 교류하였고, 이들은 훗날 그의 문인이자 북학파의 동료가 되었다.
1780년 청나라 사행을 다녀온 뒤 견문을 담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저술하여 이용후생론을 폈다.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 한문소설을 통해 양반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만년에 안의현감,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 지방관을 지냈다. 첫째 아들 박종의는 형 박희원의 양자로 입적되었으며, 손자 박규수(1807~1877)는 개화사상의 선구자로 우의정을 지냈다. 묘는 경기도 장단군에 있었으나 6·25 이후 실전되었다가 1990년대에 재정비되었다.
경기도 장단군 송서면 대세현
손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7)는 우의정을 지낸 개화사상의 선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