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극탕평론을 제시한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소론의 영수
| 생몰 | 1631 ~ 1695 |
| 시대 | 조선 |
| 본관 | 반남 박씨 |
박세채(朴世采, 1631~1695)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본관은 반남이다.
성리학과 예학에 정통한 소론의 영수로, 당쟁을 완화하기 위한 황극탕평론을 제시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재야에 머무는 동안 윤증·정제두 등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학문 교류를 이어갔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귀한 뒤 우찬성을 거쳐 좌의정에 올라 남구만 등과 함께 이이·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신라부터 조선 중기까지 유학자의 사우 연원을 정리한 《동유사우록》을 비롯하여 《남계집》 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문묘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