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와 신문사 지국에서 활동한 언론인·사회운동가, 박정희의 형, 1946년 대구 10·1 사건 중 사망
| 생몰 | 1905 ~ 1946 |
| 시대 | 일제강점기·광복 직후 |
| 본관 | 고령 박씨 |
박상희(朴相熙, 1905~1946)는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로 본관은 고령입니다. 1905년 9월 10일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서 박성빈과 백남의의 3남으로 태어났고, 9세 때 가족과 함께 선산 구미면 상모리로 이사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이며, 정치인 김종필이 그의 맏사위입니다.
1920년 구미보통학교에 입학해 1925년 졸업했고, 1920년대 말 선산청년동맹 준비위원과 상무위원, 1928년 집행위원을 지냈습니다.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함께 결성한 신간회에서 간부로 항일 활동에 나섰고, 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1934년 조선중앙일보 대구지국장, 1935년 동아일보 구미지국장 겸 주재기자로 일했습니다.
1944년 건국동맹에 가담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상태에서 광복을 맞았다고 합니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구미지부를 만들고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산군지부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같은 해 10월 대구 10·1 사건 때 구미 경찰서에서 시위대와 진압 경찰 사이를 중재하다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고 전해집니다(10월 6일). 동생 박정희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소개되지만, 그 정도에 대한 평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선산청년동맹과 신간회에서 활동하며 지역 청년·사회단체의 중심이 되었고,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지국을 맡아 지역 언론인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구미보통학교 초기 학생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동했고,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좌우 갈등 속에서 한때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가 침묵을 선택했다고 전합니다. 1946년 10월 대구 10·1 사건 중 숨졌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맏사위는 정치인 김종필(김종필)입니다. 사생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