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세운 첫 개신교회 소래교회의 설립자, 성경 번역·전도에 힘쓴 초기 장로교 조사

| 생몰 | 1848 ~ 1926 |
| 시대 | 개항기·일제강점기 |
| 본관 | 대구 서씨 |
서상륜(1848~1926)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기독교인으로 본관은 대구입니다. 평안도 의주에서 서석순의 아들로 태어났고 동생은 목사가 된 서경조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의주와 만주에서 홍삼 무역 등 상업에 종사하다가, 1878년 만주 뉴좡에서 병이 나 스코틀랜드 선교사 매킨타이어의 주선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1882년 선양에서 존 로스 목사의 한글 성경 번역에 약 5개월간 참여하고 5월 28일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성경을 보급하며 전도했고 쇄국 시기의 단속을 피해 황해도 장연 솔내(소래)로 가서 1883년 소래교회를 세웠습니다. 1884년부터 정기 주일 예배를 인도했으며 동생 서경조와 함께 한국인이 세운 첫 개신교회로 꼽힙니다. 1887년에는 언더우드가 소래를 방문해 서상륜, 서경조 등에게 세례를 집전했고, 같은 해 새문안교회 창립에도 참여했습니다.
1907년에는 고종의 특별 지시를 받고 상경해 의병 해산을 촉구하는 선유칙서를 전국에 보급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부분은 평가가 엇갈릴 수 있습니다. 부인에게서 딸 서윤애만 두어 동생 서경조의 아들 서병호를 양자로 맞았습니다. 1938년 그의 묘지에 성경 번역 등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1882년 선양에서 존 로스의 한글 성경 번역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1887년 『예수셩교젼셔』 간행에도 관여했습니다.
쇄국의 단속을 피해 황해도 장연 솔내에 정착해 1883년 소래교회를 세웠고, 동생 서경조와 함께 한국인이 세운 첫 개신교회로 꼽힙니다.
묘지에 1938년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양자로 서병호(독립운동가)를 들였습니다.
소래교회를 세우고 한글 성경 번역·보급에 힘쓴 초기 개신교 전도자입니다.
동생 서경조의 아들 서병호를 양자로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