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우고 동북면을 지킨 조선 초의 무신, 곡산 연씨의 실질적 시조 (곡성군)
| 생몰 | 1366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곡산 연씨 |
연사종(延嗣宗, 1366~?)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무신으로, 곡산 연씨가 실질적 시조로 받드는 인물이다. 1366년 고려 동북면 함주(咸州, 지금의 함흥)에서 태어났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본래 황해도 곡산 사람으로 조부 대에 함흥으로 옮겨와, 이미 삼대째 그곳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동향으로, 위화도 회군 때 장군 진무(鎭撫)로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조선이 건국되자 회군공신·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고, 태종 원년(1401) 제2차 왕자의 난 때 대장군으로서 정안군(뒷날 태종)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올랐다. 이어 상장군(上將軍)·호조 전서를 거쳐 곡성군(谷城君)에 봉해졌다.
동북면 출신으로 변방 사정에 밝아, 태종·세종 대에 걸쳐 동북면병마도절제사·길주도찰리사·동북면도순문사 겸 영흥부윤 등을 지내며 여진의 침입으로부터 동북면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정에서 동북면 관련 현안을 논의할 때면 임금이 그를 불러 의견을 구할 정도였다. 뒤에는 한성으로 소환되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삼군 도진무·중군 도총제 등을 역임하였고, 세종의 명으로 태조의 아버지 환조(桓祖)의 정릉(定陵)을 정비하고 신도비를 세우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슬하에 연경(延慶)·연비(延庇)·연음(延廕) 세 아들을 두었으며, 오늘날 곡산 연씨는 대부분 그의 후손으로 이어진다. 맏아들 연경은 판안주목사를 지내고 145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아들 연경·연비·연음을 두었으며, 오늘날 곡산 연씨는 대부분 그의 후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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