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이씨의 일세조로 모시는 조선 개국원종공신, 개명 이개(李開), 시호 문정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개성 이씨 |
이덕시(李德時)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살았던 인물로, 개성 이씨 시조 이차감의 손자입니다. 이름을 이개(李開)로 고쳤다고 전하며, 후손들은 그를 일세조로 삼고 개성을 본관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중시조로 소개합니다.
고려에서는 통훈대부(통정대부로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에 올랐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고 합니다. 사후에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는 기록과 문정공이라는 시호가 전합니다. 다만 추증 관직과 시호는 자료마다 설명이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아들 이등이 태조 이성계의 서녀 의령옹주와 혼인해 계천위에 올랐고, 손자 이선은 판서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시조 이차감은 고려 충숙왕 때 녹사령·동정 등을 거쳐 개성부윤을 지내고 개성에 자리 잡았다고 전하며, 청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 손자 이덕시, 곧 이개를 일세조로 삼아 개성을 본관으로 하면서 오늘의 개성 이씨 세계가 이어졌습니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고 합니다. 원종공신은 개국 때 정공신 외에 공이 있는 사람을 폭넓게 포상한 제도입니다. 이덕시의 구체적인 활약과 생몰 연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이등(계천위), 손자 이선(판서)이 전해집니다. 이선의 아들 이광세는 세종 때 통훈대부로 현령을 지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