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때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초상화의 명인, 호 화산관
| 생몰 | 1756 ~ 1813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개성 이씨 |
이명기(李命基, 1756~1813)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본관은 개성, 호는 화산관(華山館)입니다. 도화서 화원으로 사과(司果)를 지냈고,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가받습니다. 아버지 이종수도 도화서 화원이었고, 장인은 화원 김응환입니다.
1791년 정조 어진(원유관본)을 그릴 때 도사(圖寫)를 맡은 주관화사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통일신문의 개성 이씨 소개는 1796년에 임금의 초상화를 그려 더욱 이름이 났다고 적어 연대가 엇갈립니다. 산수화는 김홍도의 화풍을 짙게 반영해 독자적 개성은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대표작으로 〈서직수 초상〉·〈관폭도〉·〈산수인물도〉(국립중앙박물관), 〈송하독서도〉(호암미술관), 〈장범선유도〉(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보물 제1509호 〈허목 초상〉(국립춘천박물관)이 있고, 〈홍가신 초상〉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04호입니다. 강세황의 초상과 유언호 초상도 그의 작품으로 전합니다.
아버지 이종수는 도화서 화원과 사과를 지냈고, 장인 김응환 또한 화원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동생 이명규의 아들 이인식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1791년 정조 어진 제작에서 도사를 맡은 주관화사였습니다. 〈허목 초상〉이 보물 제1509호로 지정되어 있고, 〈강세황 초상〉·〈유언호 초상〉·〈서직수 초상〉 등 사대부 초상을 남겼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없어 동생 이명규의 아들 이인식을 양자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