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문신
| 생몰 | 1459 ~ 1531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한산 이씨 |
이유청(李惟淸, 1459~153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 자는 직재(直哉)이며 이훈(李塤)의 장남입니다. 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한산 이씨 문신입니다.
1480년(성종 11) 22세에 사마양시에 합격했고 1486년(성종 17)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 문학, 장령을 지냈습니다. 연산군 때는 전라도 양전종사관을 거쳐 사헌부집의가 되었다가 무오사화 때 화를 입었고, 갑자사화 때는 노비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동부승지로 새로 불려 나온 뒤 우부승지를 건너 우승지에 오르는 등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이후 대사헌, 호조참판, 황해도·경기도 관찰사,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지냈습니다. 기묘사화 때는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 데 가담했다고 기록되며, 이후 우참찬과 좌참찬을 거쳐 우의정을 지내고 좌의정에 이르렀습니다. 신용개·성희안·유순정·남곤·정광필 등 훈구 대신들과 친했다고 합니다. 1527년 영중추부사로 옮겼다가 153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가문의 이자가 기묘사화에 희생된 것과 대조되는 행적이어서, 한 문중 안에서도 사림과 훈구 사이에 입장이 갈렸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한산 이씨 안에서도 이자는 사림, 이유청은 훈구에 가까운 길을 걸었습니다. 무오·갑자사화에서 화를 입은 경험이 반정 뒤 빠른 승진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그의 정치적 평가는 사료에 따라 갈릴 수 있습니다. 시호 등 세부 사항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고, 1527년 영중추부사로 옮겼습니다. 중종 때의 좌의정입니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고 갑자사화 때 노비가 된 적이 있다고 전하며, 중종반정 뒤 풀려났습니다. 기묘사화에서는 조광조 일파 숙청에 가담했다고 기록됩니다. 같은 가문의 이자와는 대조되는 행적입니다.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이훈입니다. 후손 관계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한산 이씨 문신입니다.
직재입니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 데 가담했다고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