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윤씨(海平 尹氏) — 고려의 윤군정을 시조로 하며 조선과 근현대에 인물을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고려의 윤군정을 시조로 하며 조선과 근현대에 인물을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해평 윤씨 인구는 약 32,09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윤씨라도 본관(해평)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해평 윤씨(海平 尹氏)는 고려 고종·원종 때의 문신 윤군정(尹君正)을 시조로 하는 성씨입니다. 윤군정은 1257년(고종 44) 원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원종 때 우복야·좌복야를 거쳐 1273년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상서좌복야 판공부사에 올랐습니다.
본관 해평은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대입니다. 윤군정의 손자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고려에 행성(行省)을 두려는 논의를 멈추게 한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고, 도첨의 정승에 올라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삼고 윤군정을 소급해 시조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파평 윤씨와는 계통이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해평 윤씨는 윤석의 두 아들 대인 4세에서 크게 둘로 나뉩니다. 맏아들 윤지현의 후손이 문영공파로 8세에 4개 분파를 이루었고, 둘째 윤지표의 후손이 충간공파로 13세에 이르러 16개 분파로 갈라졌습니다.
향토 자료에 따르면 해평 윤씨는 조선시대에 상신(相臣) 6명과 문형(대제학) 3명을 배출했습니다. 이 가운데 중종 때 영의정 윤은보와 선조 때 영의정 윤승훈만 문영공파이고, 나머지는 모두 충간공파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선조 때 영의정 오음 윤두수의 후손인 오음공파와, 그 아우로 대제학을 지낸 월정 윤근수의 후손인 월정공파가 크게 번성해 오늘날 해평 윤씨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윤두수의 다섯 아들 윤방·윤흔·윤휘·윤훤·윤오는 모두 과거에 급제했고, 맏아들 윤방은 인조 때 영의정에 올라 '부자 영상(父子領相)'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들의 후손이 치천공파(윤방), 도제공파(윤흔), 장주공파(윤휘), 백사공파(윤훤) 등을 이루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윤상서체로 이름난 이조판서 윤급, 정조 때 우의정 윤시동, 대제학을 지낸 윤순지·윤순 등이 나왔고, 한말에는 의정 윤용선이 있었습니다. 치천공파에서는 윤신지의 아들 윤지가 이조참판을, 윤지의 5세손 윤명렬과 그 아들 윤치희가 각각 이조참판과 이조판서를, 다시 윤치희의 아들 윤용선이 의정을 지내 여러 대에 걸쳐 고관이 이어졌습니다.
왕실과의 혼인도 잦아, 선조의 부마 윤신지와 순조의 부마 윤의선이 이 가문 출신이며, 대한제국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도 윤방의 후손입니다. 근현대에는 윤흔의 8세손인 윤치호, 도제공파 22세손으로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등이 나왔습니다. 2015년 인구조사에서 해평 윤씨는 32,091명입니다.
시조 윤군정의 묘소는 실전되어, 1971년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에 단을 세웠다가 1998년 본관지인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로 옮겨 모셨고, 2003년 단비를 새로 세웠습니다. 문영공 윤지현의 묘소도 실전되어 1925년 괴산 사리면 소매리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대표적인 세거지로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와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충남 청양군과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경북 상주시 외서면 이천리 등이 꼽히며, 북녘에는 황해도 금천군에도 집성촌이 있었습니다. 아산 둔포면에는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는 그가 살던 윤보선 가옥이 남아 있어 국가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문영공파, 충간공파, 월정공파, 도제공파, 치천공파, 장주공파, 백사공파
문영공파는 해평부원군 윤석(尹碩)의 장남 윤지현(尹之賢)을 파조로 합니다. 윤지현은 광정대부로 정당문학·진현관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영(文英)입니다.
시조 윤군정의 4세손 대에서 충간공파와 갈라졌고, 8세에 이르러 한성윤공파·청주공파·장령공파·남원공파의 4개 분파로 나뉘었습니다.
충간공파는 윤석의 차남 윤지표(尹之彪, 1310~1382)를 파조로 합니다. 윤지표는 단성익위공신으로 중대광 문하평리에 올라 해평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고, 목은 이색이 그의 묘지명을 지었습니다.
13세에 이르러 16개 분파로 나뉘었으며, 조선 선조 대의 영의정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와 그 아우 윤근수가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월정공파는 오음 윤두수의 아우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를 파조로 하는 충간공파의 분파입니다.
충간공파가 13세에서 나뉜 16개 분파 가운데 하나로, 윤두수의 아들들이 이룬 치천공파·도제공파·장주공파·백사공파·방어공파와는 숙질 관계의 계열입니다.
도제공파는 오음 윤두수의 아들 윤흔(尹昕)을 파조로 하는 충간공파의 분파입니다.
제4대 대통령 윤보선(尹潽善, 1897~1990)이 이 파의 22세손으로, 그는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1960년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치천공파는 오음 윤두수의 맏아들로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치천공 윤방(尹昉, 1563~1640)을 파조로 하는 충간공파의 분파입니다. 윤방은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해 물러났다가 인조반정 뒤 예조판서·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아버지와 함께 '부자 영상'으로 불렸습니다.
아들 윤이지는 돈령부판사, 윤신지는 선조의 부마였으며, 후손 가운데 이조판서 윤치희, 한말 의정 윤용선, 순조의 부마 윤의선이 있고, 대한제국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도 윤방의 후손입니다.
장주공파는 윤두수의 셋째 아들 장주공 윤휘(尹暉)를 파조로 하는 충간공파의 분파입니다. 윤휘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며 적진을 오가 화의를 교섭했고, 뒤에 형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올랐습니다.
손자 윤계와 증손 윤세기가 모두 병조판서를 지냈고, 글씨로 이름난 이조판서 윤급, 정조 때 우의정 윤시동, 판서를 지낸 윤치용·윤치정 형제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백사공파는 윤두수의 넷째 아들로 병조판서를 지낸 백사공 윤훤(尹暄)을 파조로 하는 충간공파의 분파입니다.
윤훤의 아들 윤순지가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고, 증손 윤유는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같은 계통의 윤순은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에 올라 조선 후기 서예가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윤군정(시조·고려 상서좌복야), 윤석(해평부원군·본관의 유래), 윤지표(충간공파 파조), 윤은보(중종 때 영의정), 윤두수(조선 문신·영의정), 윤근수(대제학·호 월정), 윤승훈(선조 때 영의정), 윤방(인조 때 영의정), 윤신지(선조의 부마·서화가), 윤순(대제학·서예가), 윤급(이조판서·윤상서체), 윤치호(개화 지식인), 순정효황후(순종 계비), 윤보선(제4대 대통령)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해평 윤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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