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이씨(旌善 李氏) — 강원도 정선군을 본관으로 하며, 베트남 리(李) 왕조 왕족 이양혼이 고려에 건너왔다는 전승을 가진 성씨입니다. 고려 무신 집권자 이의민을 배출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리 왕조 후손설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을 본관으로 하며, 베트남 리(李) 왕조 왕족 이양혼이 고려에 건너왔다는 전승을 가진 성씨입니다. 고려 무신 집권자 이의민을 배출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리 왕조 후손설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정선 이씨 인구는 약 3,65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이씨라도 본관(정선)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승지공파 등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이의민(고려 무신 집권자), 이란(예부 관직), 이희민(대장군), 이우원(정선 입향 9세)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정선 이씨(旌善 李氏)는 강원도 정선군을 본관으로 하며, 족보인 《정선이씨세보》는 이양혼(李陽焜, 베트남 이름 리즈엉곤)을 시조로 모시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주 이씨 등 다른 이씨 본관과는 별개이며, 같은 정선을 쓰는 정선 전씨와도 다른 가문입니다.
족보에 따르면 이양혼은 베트남 리 왕조 인종(仁宗)의 아들로 형 신종(神宗) 대의 왕위 문제로 송나라로 건너갔다가, 금나라와의 전쟁을 피해 1127년경 고려 경주에 정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트남 사서에는 인종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신종의 출생연도(1116년)를 고려하면 이양혼이 12세기 전반의 인물이라는 설정과 맞지 않으며, 6세손으로 소개되는 이의민과의 연결도 어렵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일부 연구는 이의민 가문의 계보를 높이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조흥국 2013 연구 등으로 소개).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3,657명으로 소개되며, 2015년 수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본관지 정선을 비롯해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에 연고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양혼의 아들 이란은 인종 때 예부의 관직을 지냈고, 손자 이무정은 문관 고위직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6세손으로 소개되는 이의민(?~1196)은 천민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1170년 무신정변에 가담해 고려의 실권자가 되었다가 최충수·최충헌 형제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사촌 이희민이 대장군에 올랐다는 서술도 있으나 직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9세손 이우원이 정선에 정착했다고 전해져 정선 입향조로 여겨집니다. 조선 시대의 구체적인 인물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승지공파가 있으며 항렬이 별도로 쓰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파조의 이름과 세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해 별도 파 카드는 두지 않았습니다.
1995년 베트남이 리 왕조 후손을 초청했을 때 정선 이씨 대표단이 화산 이씨 대표단과 함께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두 가문의 도래 이야기는 계보가 서로 다르게 제시되고 학계의 평가도 엇갈립니다.
이의민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이란·이희민·이우원이 족보상 인물로 소개됩니다.
《정선이씨세보》가 전해지며, 항렬표가 있고 승지공파는 별도 항렬을 쓴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항렬자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정선 이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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