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양씨(南原 梁氏) — 남원 양씨(南原 梁氏)는 신라 때 남원부백(남원백)에 봉해진 양우량을 분관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양씨 계열입니다. 원시조는 탐라국 삼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로 전하며, 제주 양씨에서 갈라졌다고 합니다. 병부공파·용성군파·대방군파가 남원을 본관으로 하고, 2015년 통계청 조사 인구는 307,724명(22위)입니다. 조선 전기 학자 양성지, 임진왜란 의병장 양대박,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을 지킨 양헌수, 독립운동가 양세봉 등을 배출했습니다.
남원 양씨(南原 梁氏)는 신라 때 남원부백(남원백)에 봉해진 양우량을 분관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양씨 계열입니다. 원시조는 탐라국 삼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로 전하며, 제주 양씨에서 갈라졌다고 합니다. 병부공파·용성군파·대방군파가 남원을 본관으로 하고, 2015년 통계청 조사 인구는 307,724명(22위)입니다. 조선 전기 학자 양성지, 임진왜란 의병장 양대박,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을 지킨 양헌수, 독립운동가 양세봉 등을 배출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남원 양씨 인구는 약 307,724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양씨라도 본관(남원)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남원 양씨의 원시조는 탐라국 삼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로 전합니다. 남원 양씨는 제주 양씨에서 갈라진 본관입니다. 1587년에 제주와 남원 두 본관이 합보(合譜)를 만들었습니다. 1979년에는 유격공·대방군·용성군·병부공·성주공파가 함께 『양씨대동보』를 펴냈는데, 이 가운데 대방군·용성군·병부공파가 남원을 본관으로 합니다.
분관 시조는 양우량(梁友諒)입니다. 디지털진안문화대전과 디지털함양문화대전에 따르면, 757년(신라 경덕왕 16) 양우량이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지자 후손이 남원을 본관으로 삼아 제주 양씨에서 갈라졌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봉호를 '남원부백(南原府伯)'으로 적고, 양씨 중앙종친회 문중이 양우량을 '개사성조'로 모신다고 적습니다.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은 성씨 시조를 양탕(良宕), 입향 시조를 양우량으로 둡니다. 다만 본문에는 "양탕의 8세손 양자영(梁自瀛)이 경덕왕 때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졌다"고 적었고, 디지털부천문화대전도 양자영으로 적습니다. 따라서 분관 시조의 이름은 양우량과 양자영으로, 봉호는 남원부백·남원백·남원군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양탕이 신라에 간 시기도 내물왕 때인 374년(부산역사문화대전), 373년(문양공파 자료), 태종무열왕 때(디지털부천문화대전)로 갈립니다.
파의 수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디지털남원·부천문화대전은 병부공파와 용성군파의 2파로, 위키백과는 대방군파를 더해 3파로 적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노포동 항목)은 여기에 장영공파를 더해 4파로 적습니다.
충주 양씨의 기세조는 예성부원군 양능길(梁能吉)입니다. 예성군파를 남원 양씨의 파로 넣은 자료도 있지만, 충주 본관의 파이므로 따로 구분해야 합니다.
양씨(梁氏)중앙종친회는 제주·남원·충주 3개 관향을 아우르는 종친회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2025년 5월 유격공·성주공·병부공·용성군·대방군·예성군의 6개 지파 회장이 통합에 합의했습니다. 사무실은 나무위키 옛 판에 서울 중구 서소문로 111 삼영빌딩 905호로 나오지만, 지금도 같은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원양씨 문양공파 대종회는 2002년 4월 눌재회관(양씨회관)을 준공했으며 인터넷 사이트(yangsungji.com)를 운영합니다. 양씨부산종친회는 이름에 본관을 넣지 않고 매년 정기총회를 엽니다.
위키백과에 실린 병부공파 항렬(28~59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가운데 28~31세와 44~47세는 다음 카페 항렬표와 일치합니다.
용성군파와 대방군파의 항렬은 파마다 다르다는 언급만 확인했고, 실제 항렬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남원 양씨(梁)는 307,724명으로 22위였습니다. 2000년에는 218,546명이었습니다. 문양공파 사이트에 실린 1985년 '34만 3,985명'은 어느 범위를 센 숫자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원 양씨(楊)는 한자가 다른 별개의 성씨이므로 구분해야 합니다.
병부공파, 용성군파, 대방군파, 장영공파, 문양공파, 수사공파
병부공파는 고려 성종 때 병부낭중과 동궁 시강학사를 지냈다고 전하는 양능양(梁能讓)을 기세조로 합니다. 용성군파·대방군파와 함께 남원 양씨의 3대 기세조 계통으로, 제단과 묘소는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중광원에 있습니다.
10세에서 판서공파(양동필), 밀직공파(양송조), 묵재공파(양우), 좨주공파(양서), 집의공파(양윤유)로 나뉘었습니다. 독립군 지도자 양세봉(梁世奉)은 이 파 좨주공파의 후손입니다.
용성군파는 고려 원종 때 찬화공신에 올라 용성부원군에 봉해진 양주운(梁朱雲)을 기세조로 합니다. 재실 용만재(龍巒齋)는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에 있습니다.
3세 양중규(梁仲奎)의 대제학공계와 양윤위(梁潤渭)의 장영공계 두 갈래로 나뉘며, 대제학공계에서는 6세 양사도·양사귀·양사철을 파조로 하는 문절공파·부사공파·평리공파가, 장영공계에서는 참봉공파·이판공파·정국공파 등이 갈라졌습니다.
대방군파는 고려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에 봉해진 양수정(梁水精)을 기세조로 합니다. 대방(帶方)은 남원의 옛 이름입니다. 제단 숭모원(崇慕原)은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중촌리에 있습니다.
4세에서 양결(부사공파), 양민(정의공파), 양역(연일공파), 양교(현감공파), 양준(군수공파) 등을 파조로 하는 분파가 나뉘었습니다.
장영공파는 양윤위(梁潤渭)를 파조로 한다고 전하는 남원 양씨의 파입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의 노포동 항목과 surname.info에 나옵니다.
남원 양씨의 파 수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디지털남원·부천문화대전은 병부공파와 용성군파의 2파로, 위키백과는 대방군파를 더해 3파로 적습니다. 장영공파까지 넣어 4파로 적은 자료는 부산역사문화대전입니다.
파조의 생몰년, 관력, 세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양공파는 병부공파의 지파입니다. 시호가 문양(文襄)인 양성지를 파조로 합니다. 양성지는 양우의 손자로 남원군에 봉해진 양구주의 둘째 아들입니다.
남원양씨 문양공파 대종회는 2002년 4월 눌재회관(양씨회관)을 준공했습니다. 부산 금정구 노포동 대룡마을에는 문양공파가 16대째 살고 있습니다(2013년 기준). 이곳의 '남원 양씨 문양공파 대룡문중 진성단'은 232위를 모시며, 매년 10월 첫째 일요일에 향사합니다.
양성지의 묘역과 신도비는 김포시 양촌면 대포리에 있습니다.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을 지킨 양헌수가 양성지의 13대손입니다.
수사공파는 문양공파의 지파로, 문양공 양성지의 증손을 파조로 합니다. 디지털부천문화대전에 나오며, 파조의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천 괴안동에 세거합니다. 27세손 양주영(梁株永)이 이곳에 입향해 약 160년 동안 살아왔다고 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양우량(신라 경덕왕 때 남원백에 봉해진 분관 시조), 양능양(고려 성종 때 병부낭중, 병부공파 파조), 양주운(고려 원종 때 용성부원군, 용성군파 파조), 양수정(고려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 대방군파 파조), 양우(병부공파 10세, 호 묵재), 양구주(남원군, 양성지의 아버지), 양성지(조선 전기 학자, 홍문관대제학, 규장각 설치 첫 건의), 양연(중종 때 병조·이조판서), 양대박(임진왜란 의병장, 운암전투), 양경우(양대박의 아들, 명군에 군량 조달), 양헌수(병인양요 정족산성 전투 지휘), 양세봉(조선혁명군 총사령관, 건국훈장 독립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남원 양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남원 양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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