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천 김씨 족보·가계도 온라인으로 만들기

통천 김씨(通川 金氏) — 강원도 통천군(현재 북한 지역)을 본관으로 하며, 경순왕의 손자 김교를 시조로, 고려 말 판도판서 김원등을 중시조로 모시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전북 완주·전주와 충남 서천 일대에 세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진산공파·군수공파·전직공파의 세 파로 나뉩니다.

인구 — 약 5,669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통천 김씨란

강원도 통천군(현재 북한 지역)을 본관으로 하며, 경순왕의 손자 김교를 시조로, 고려 말 판도판서 김원등을 중시조로 모시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전북 완주·전주와 충남 서천 일대에 세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진산공파·군수공파·전직공파의 세 파로 나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통천 김씨 인구는 약 5,66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통천)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진산공파, 군수공파, 전직공파

진산공파 (珍山公派)

진산공파는 통천 김씨 중시조 판도판서 김원등의 후손 가운데 3세인 진산교도(珍山敎導) 김여산(金如山)의 후손들을 일컫는 분파로, 진산교도공파·교도공파라고도 합니다. 완산지에는 김여산이 생진과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군수공파 (郡守公派)

군수공파는 3세 군수 김중령(金仲齡)의 후손들을 일컫는 분파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 계통 일족이 멸족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직공파 (前職公派)

전직공파는 3세 전직(前職) 김중복(金仲福)의 후손들을 일컫는 분파입니다. 기축옥사의 김빙이 중시조의 9세손으로 이 파에 속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김중권(고려 유학자), 김빙(조선 문신), 김진(남계정 건립), 김여련(임진왜란 순절), 김응의(조선 인물), 김익한(조선 인물), 김일영(유학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시조·중시조와 본관의 유래

통천 김씨(通川 金氏)는 강원도 통천군(현재 군사분계선 이북의 북한 지역)을 본관으로 하며, 통주 김씨·금양 김씨라고도 불립니다. 위키백과 등에 따르면 시조는 김교(金較)로, 신라 경순왕의 손자이며 고려 광종 때 통주군에 봉해졌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는 족보 전승에 의존하는 설명입니다. 실제 계대의 중심이 되는 중시조는 고려 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를 지낸 김원등(金遠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은 시기에 따라 달리 불렸다고 합니다. 1285년(충렬왕 11)까지는 금양 김씨, 1413년(태종 13)까지는 통주 김씨, 이후 현재까지 통천 김씨로 불렸다는 정리가 있습니다. 시조의 윗대로는 1784년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경순왕의 여덟 아들 중 맏아들 김일(金鎰)을 시조의 아버지로 보는 설이 있으나, 마의태자와 동일시하기도 하는 이 설은 진위에 의문이 제기되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701년 간행된 《신사보》는 시조를 김교로 기록합니다.

인구와 세거지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통천 김씨는 5,669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집성촌으로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와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안덕원·반암리, 충남 서천군 비인면 관리·종천리, 서천군 판교면 우라리,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조선 시대에 관직을 따라 강원도 통천에서 전라도 완산(전주·완주 일대)과 충청도 서천 지방으로 옮겨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중시조 김원등의 후손들이 대대로 가통을 이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인물로는 이규보의 외조부로 알려진 김중권(울진현위, 유학자)이 문과 기록과 함께 소개됩니다. 중시조 김원등은 고려 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고려 우왕 6년(1380)과 조선 태조 7년(1398)의 호구 입안 문서, 세종 8년(1427)의 분재 문권이 후대 족보 편찬의 근거 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조선 전기에는 김호(세종 1년, 1419 증광시 문과, 중랑장·현감), 김권(중종 12년, 1517 별시 문과, 남원도호부사), 김원(명종 8년, 1553 별시 문과, 홍문관 교리) 등이 문과에 올랐다고 합니다. 선조 대에는 김빙이 158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교리에 이르렀으나 1589~1590년 기축옥사 때 정여립의 추국관을 맡았다가 무고로 도당으로 몰려 곤장을 맞고 숨졌고, 1624년(인조 2) 복작되었다고 전합니다. 김여련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다 의주에서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군수공파 일족이 멸족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가세가 크게 기울어 양란 이후에는 생진과 합격자 세 명 외에 과거 급제자를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학자로는 남계정을 세운 김진이 있고, 이괄의 난 평정과 관련해 이름이 전하며 봉명서원에 배향된 김응의(문집 《죽포집》이 전함)도 있습니다.

파(派) 개요

통천 김씨는 중시조 김원등의 증손대에 크게 세 파로 나뉜다고 전해집니다. 위키백과는 김호의 세 아들에게서 진산교도공파·군수공파·전직공파가 갈라졌다고 설명합니다.

세대 수와 계대는 자료마다 다르므로(예: 김빙은 중시조의 9세손이자 전직공파로 소개됩니다) 본인의 족보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금화 김씨(시조 진사 김낭, 금화는 현재의 강원도 철원군)가 통천 김씨에서 갈라진 분적으로 소개됩니다.

대표 인물

고려의 김중권, 조선의 김호·김권·김원, 김익한(경기전 중건, 효행으로 기록), 김빙(기축옥사 때 추국관), 김진(남계정 건립), 김여련(임진왜란 때 순절), 김응의(이괄의 난 평정, 봉명서원 배향) 등이 소개됩니다. 근대에는 유학자 김일영(1877~1932)이 김진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계와 타 문중과의 관계

안산 김씨는 김위(정난공신)와 김원상을 시조·선조로 모시는데, 통천 김씨는 1970년 《경술보》에서 김위를 중시조 김원등과 잇는 계대를 세웠다고 합니다. 광산 김씨와는 두 가문의 계보가 서로 다르지만 2003년 《계미보》까지 잘못된 내용이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어, 이 부분은 자료마다 판단이 갈립니다.

유적과 족보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의 남계정(南溪亭)은 김진이 합천 교도(훈도)를 마치고 낙향해 제자를 가르치려고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소개됩니다(건립 연도는 자료에 따라 1580년으로 적기도 하나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고경명·조헌·신응시 등이 남긴 글이 전한다고 합니다. 중시조 김원등의 단소는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대종산에 있다고 전하며, 시조 김교의 유적은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봉곡, 사당은 감당면 내동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 북한 지역이라 확인이 어렵습니다. 족보는 1701년 《신사보》 초간 이후 1970년 《경술보》, 2003년 《계미보》가 언급됩니다. 종친회와 항렬은 확인된 자료가 없으니 소속 파의 족보나 종친회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통천 김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통천)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통천 김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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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 김씨 종친회

통천 김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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