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옥씨(宜寧 玉氏) — 당나라 출신 학자 옥진서를 시조로 모신다고 전하는, 경남 의령을 본관으로 하는 옥씨의 단본입니다.
당나라 출신 학자 옥진서를 시조로 모신다고 전하는, 경남 의령을 본관으로 하는 옥씨의 단본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의령 옥씨 인구는 약 22,45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옥씨라도 본관(의령)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의령 옥씨(宜寧 玉氏)는 경상남도 의령군을 본관으로 하는 옥씨입니다. 문헌에는 옥씨가 17개 본관으로 전한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의령 옥씨 하나(단본)로 합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의령 옥씨 19,095명과 의춘 옥씨 3,357명을 합쳐 22,452명으로 집계됩니다.
시조는 옥진서(玉眞瑞)입니다.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파견된 8재사(八才士)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고구려가 망한 뒤 신라에서 국학교수를 지내고 그 공으로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시호는 문혜(文惠)입니다. 다만 시조 이후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세계(世系)를 고증할 수 없으므로, 문중은 고려 때 창정을 지낸 옥은종(玉恩宗)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 갑니다. 종친회 자료는 1171년생인 옥은종을 김해에서 발견된 호적 기록에 근거해 확인되는 첫 선조로 소개합니다.
위키백과는 고려 시대에 옥은종을 기세조로 하는 계통과 평장사를 지낸 옥여(玉汝)를 기세조로 하는 계통으로 갈라졌다고 소개합니다. 반면 문중 자료의 세계도에서는 1세 창정공 은종 아래 5세에 성균생원공 전백과 평장사공 여가 함께 나오는 등, 두 인물의 관계를 달리 적고 있어 자료를 병기합니다. 은종의 6세손 옥안덕의 아들 옥사온은 1389년(창왕 1) 문과에 급제했고, 사온의 아우 옥사미의 아들 옥고는 1399년 문과에 급제해 어사부 장령에 올랐습니다. 『조선씨족통보』에서는 옥사미 계통이 반성 옥씨로, 옥사온 계통이 의령 옥씨로 분적되었다가 지금은 의령 옥씨로 합보된 것으로 보입니다.
1389년 문과 급제자가 『등과록전편』에는 '왕사온(王斯溫)', 『조선씨족통보』에는 '옥사온(玉斯溫)'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성계의 역성혁명 이후 화를 피하려 개성 왕씨 일부가 옥씨로 성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 소개됩니다. 1918년의 개성 왕씨 무오보에는 옥씨를 쓰던 일부가 다시 왕씨로 돌아간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거제도에 집성촌이 많은 점을 이 설과 연결 짓는 이야기도 있으나 추측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의견도 있습니다. 개성 옥씨 등 별도 계통과 시조가 다르다는 설명도 있으니, 우리 집안이 어느 계통인지는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조선 시대에는 문과 5명, 무과 6명, 생원시 4명, 진사시 4명의 급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 인물로 청백리 옥고가 있고, 근현대에는 독립운동가 옥관빈, 제자훈련 목회의 옥한흠 목사, 공군참모총장 옥만호, 경제학자 옥동석, 정치인 옥조남, 음악가 옥길성, 가수·배우 옥주현·옥택연이 있습니다.
창정공 은종 계통, 평장사공 여 계통, 정은공 사온 계통, 사미 계통(반성 옥씨 합보)
창정공 옥은종(玉恩宗)은 문중 세계도에서 1세로 삼는 중시조입니다. 1171년생으로 전하며, 김해에서 발견된 호적 기록이 확인되는 첫 선조의 근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때 창정(倉正)을 지냈습니다.
세계도상 2세 호장정위공 균지, 3세 호장공 문량, 4세 호장정조공 성으로 이어지고, 5세에 성균생원공 전백과 평장사공 여가 나오며, 6세 진사공 안덕을 거쳐 7세 정은공 옥사온에 이릅니다. 오늘날 의령 옥씨의 대부분이 이 계통에 속합니다.
공식 파명은 확인하지 못해 '계통'으로 표기했습니다. 은종의 출생을 공양왕 3년(1389)으로 적은 자료도 있어 연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평장사공 옥여(玉汝)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인물로, 위키백과는 이분을 기세조로 하는 계통이 따로 있다고 소개합니다. 한편 문중 세계도는 옥여를 창정공 은종의 아래 5세로 적고 있어(성균생원공 전백과 같은 세대), 두 계통의 관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의령 옥씨는 시조 이후의 문헌이 실전되어 선계를 상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처럼 기세조를 달리 잡는 계통이 생긴 것으로 설명됩니다. 후손의 세계 확인은 족보로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옥사온(玉斯溫)은 옥은종의 6세손 진사 옥안덕의 아들로, 1389년(창왕 1) 문과에 급제한 인물입니다. 문중 자료는 7세 정은공 사온 아래 8세 별시위공 호, 9세 감사공 화로 이어진다고 전하며, 경남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선영에 이들의 묘소가 있다고 합니다.
『등과록전편』에 '왕사온'으로 나와 개성 왕씨가 옥씨로 성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조선씨족통보에서는 이 계통이 의령 옥씨로 분적된 것으로 보입니다.
옥사미는 진성감무를 지낸 인물로, 옥안덕의 아들이자 옥사온의 형입니다. 그의 아들이 청백리로 알려진 옥고입니다. 『조선씨족통보』에서 옥고가 반성 옥씨 편에 실린 데서, 형 사미 계통은 반성 옥씨로, 아우 사온 계통은 의령 옥씨로 갈린 것으로 보며 지금은 의령 옥씨로 합보되었습니다.
옥고는 야은 길재의 문하에서 배워 어사부 장령에 올랐고, 안동 묵계서원에 모셔졌다고 전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옥진서(시조 전승), 옥고(청백리 문신), 옥관빈(독립운동가), 옥한흠(사랑의교회 목사), 옥만호(공군참모총장), 옥동석(경제학자), 옥조남(제6대 국회의원), 옥길성(작곡가), 옥주현(가수·뮤지컬 배우), 옥택연(2PM·배우)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시조가 봉해져 살았다는 의령(의춘)을 중심으로 영남에 많이 살았고, 전란과 정란을 거치며 전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집성촌으로 경남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산북리, 경북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 경남 통영시 도산면 수월리, 거제시를 들고 있습니다. 문중 자료는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일대와 칠곡면 산남리를 집성촌으로도 소개합니다. 거제는 흔히 '거제 옥씨'로 불릴 만큼 많이 산다고 하지만 본관은 의령입니다.
문중 자료에 따르면 경남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일대에 선영이 있고, 7세 정은공 사온, 8세 별시위공 호, 9세 감사공 화 등의 묘소가 있다고 합니다. 시조와 창정공의 묘소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1968년 당시 대종회장이 경모재 안에 시조 제단비를 세워 시조 향사를 올리게 되었고, 2012년 11월에는 의춘사(宜春祠) 중수 준공식과 시향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향사 일정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대종회에 확인하세요.
안동 길안면의 묵계서원은 옥고와 김계행을 함께 모신 서원으로 소개됩니다(1687년 창건, 1998년 복원).
종중 업무는 의령옥씨대종회가 맡으며, 재단법인 의령옥씨장학회가 후손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대종회의 공식 누리집과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항렬자는 12세 유(有), 13세 계(啓), 14세 응(應), 15세 성(成), 16세 경(敬), 17세 득(得)·병(炳)입니다. 세는 옥은종을 1세로 센 것으로 보이며, 지역과 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1985년 4,622가구 18,900명, 2000년 6,157가구 19,368명(의령 옥씨)이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의령 옥씨 19,095명과 의춘 옥씨 3,357명을 합해 22,452명입니다. 옥씨 전체는 2000년 기준 약 22,964명으로 성씨 순위 88위입니다.
시조 옥진서와 8재사 전승, 왕씨 환성설 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승·가설입니다. 파(派)의 공식 구분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해, 아래 '갈래'는 세계도상의 계통을 정리한 것입니다.
의령 옥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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