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옥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당나라 출신 학자, 의춘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문혜
| 시대 | 통일신라(전승) |
| 본관 | 의령 옥씨 |
옥진서(玉眞瑞)는 의령 옥씨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인물입니다. 위키백과는 한림학사·국학교수를 지내고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고 소개하며,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시호는 문혜(文惠)로 전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八才士)'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신라로 가서 국학에서 가르쳤고, 그 공으로 의춘군에 봉해져 의령(의춘)에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종친회 자료는 635년 고구려에 교수로 왔다고 적고 있으나, 같은 전승 안에서도 시기와 경로를 확인해 주는 사료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가 실존 인물인지, 어떤 경로로 신라에 정착했는지는 사료로 확인되지 않아 '전한다'로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시조 이후 536년간의 기록이 끊겨, 오늘날 의령 옥씨는 고려 때 창정을 지낸 옥은종부터 확인되는 세계를 이어 갑니다. 의령 옥씨의 전반적인 내용은 의령 옥씨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옥진서는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파견된 8재사의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고구려 멸망 뒤 신라에서 국학교수를 지냈고 그 공으로 의춘군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다만 8재사라는 집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시조 이후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문중은 1171년생으로 전하는 창정공 옥은종을 확인되는 최초의 선조로 삼아 세계를 정리합니다. 옥은종의 6세손 진사공 옥안덕의 아들이 문과에 급제한 옥사온이며, 그의 조카가 옥고입니다.
옥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1389년 문과 급제자가 『등과록전편』에는 '왕사온', 『조선씨족통보』에는 '옥사온'으로 나오는 점을 들어 고려 말~조선 초에 개성 왕씨에서 옥씨로 성을 바꾼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설을 소개합니다. 이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며, 반대로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어 문중 자료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의 선영 일대가 문중 묘역으로 알려져 있으나, 시조와 창정공의 묘소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의령 옥씨 모든 후손이 시조로 받든다. 실제 세계는 중시조 옥은종(창정공)부터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