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회·임시의정원에서 활동한 평양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사업가
| 생몰 | 1891 ~ 1933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의령 옥씨 |
옥관빈(1891~1933)은 평양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업가로, 중국 귀화 뒤에는 법명 옥혜관(玉慧觀)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위키백과 분류상 본관은 의령 옥씨입니다.
1905년 을사조약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 집필진으로 활동했습니다. 1909년 청년학우회 서기를 맡았고 흥사단 창립 구성원으로 소개되며 신민회에 가입했습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1917년 석방되었습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의원과 독립신문 총무를 지냈고, 상해 대한교민단 의원으로도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1921년 이후에는 무역업(배달공사, 삼덕양행)에 종사했으며 1928년 중국에 귀화해 불교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1933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피살되었습니다. 이 분의 서훈 내역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청년 시절 을사조약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신문 집필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청년학우회와 신민회에 관여하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6년가량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1919년 임시 의정원 의원으로 일했고 독립신문 총무를 지냈습니다. 상해 대한교민단 의원으로 두 차례 당선되었으며, 이후 무역업과 불교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1933년 8월 1일 상하이에서 피살된 것으로 정리됩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본관은 항목 분류에 따른 것이므로 종친회 자료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의령 옥씨 페이지도 함께 보세요.
1933년 8월 시신이 평양에 도착해 중화군으로 옮겨졌다고 보도되었으나, 정확한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