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융 扶餘隆

백제 의자왕의 아들로, 부여 서씨가 시조로 받드는 인물이자 당나라의 웅진도독

부여 낙화암 — 백제 사비 시기의 유적 사진으로, 인물 사진이 아닙니다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부여 낙화암 — 백제 사비 시기의 유적 사진으로, 인물 사진이 아닙니다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 공공누리 제1유형 (한국학중앙연구원, Wikimedia Commons)
생몰615 ~ 682
시대백제 말기 ~ 당 시기
본관부여 서씨

생애 약력

부여융(扶餘隆, 615~682)은 백제의 왕족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부여 서씨가 시조로 받드는 인물입니다. 자는 융(隆)이며 숭(崇)이라고도 합니다. 의자왕의 아들로 태어나 637년 당 태종에게 조공 사신으로 다녀왔고, 644년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의자왕 말년에 부여효로 교체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중국 사서는 의자왕과 함께 웅진성으로 피한 태자를 모두 융이라 적어 사실이 분명하지 않으며, 그가 마지막 태자였는지에 대해서도 학설이 갈립니다.

660년 7월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포위하자 의자왕을 따라 웅진성으로 피했고, 의자왕과 함께 항복했습니다. 같은 해 9월 소정방이 귀국하며 의자왕과 부여융을 포함한 왕족·대신·주민 1만여 명을 낙양으로 압송했고, 고종은 부여융에게 사농경을 제수했습니다. 663년에는 손인사와 함께 7천 명을 이끌고 파견되어 수군과 군량선을 인솔하며 백강 전투에 참여해 백제 부흥군을 토벌했습니다.

664년 웅진도독이 되어 백제군공에 봉해지고 마한도안무대사로서 유민을 다스렸습니다. 665년 취리산 회맹으로 신라와 화친을 맹약했으나 웅진도독부는 이후 신라에 의해 한반도에서 밀려났습니다. 682년 사망했으며, 당나라 장수로서 유민을 통치하고 부흥운동을 토벌한 점 때문에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당의 지배정책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부여 서씨의 족보는 당 고종이 그에게 서씨 성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학계에서는 이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고, 출토된 묘지석에는 부여 성이 그대로 쓰여 있다는 설명도 있어 자료가 갈립니다. 한편 나라가 망한 뒤 신분을 숨기려 성을 바꾸었을 가능성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태자 책봉을 둘러싼 이견

삼국사기를 우선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효가 태자였고, 중국 사서를 우선하면 644년 융이 태자였다가 효로 교체되었다고 봅니다. 융이 의자왕의 첫째 아들이라는 견해와 삼남 이하라는 견해가 함께 있습니다.

백제 멸망과 낙양

660년 사비성이 포위되자 의자왕을 따라 웅진성으로 갔고, 그 해 가을 낙양으로 압송되었습니다. 이때 신라 김법민(훗날 문무왕)에게 얼굴에 침을 맞는 굴욕을 당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법민의 누이 고타소랑이 죽은 일 때문이라 합니다.

웅진도독

664년 웅진도독이 되었고 665년 취리산 회맹에서 신라와 화친했습니다. 666년 이후의 활동은 당나라에서 이어졌고 682년 사망했습니다. 가계로는 장남 부여문사, 차남 부여덕장 등이 전합니다.

부여 서씨와의 관계

부여 서씨의 시조로 전하지만 족보상 연결은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려 병부상서 서존을 1세조로 삼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부여융과 서존 사이의 세계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서씨의 큰 본관인 이천 서씨와는 계통이 다르다고 이천 서씨 쪽 족보에서도 봅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여융 자주 묻는 질문

부여융은 누구인가요?

백제 의자왕의 아들로 당나라 웅진도독을 지냈고 부여 서씨가 시조로 받드는 인물입니다.

서씨 성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족보는 당 고종이 서씨 성을 내렸다고 전하나 학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어 자료가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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