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재무장·국무원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호 일강(一江)
| 생몰 | 1886 ~ 1934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영산 김씨 |
김철(金澈, 1886~1934)은 전라남도 함평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영산, 호는 일강(一江)입니다. 1886년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태어났고, 경성법률전수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17년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1918년 신한청년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19년 1월 국내에 몰래 들어와 전답을 정리해 독립자금 1만 원을 마련해 상하이로 가져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 재무위원, 국무위원, 군무부장 등을 지냈고,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군무장으로서 김구와 함께 이끌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옮겨 간 뒤 재무장을 맡았고 1934년 4월 국무원 비서장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6월 29일 항저우에서 급성폐렴으로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08년 광흥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1912년 경성법률전수학교, 1915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해 귀국했습니다. 귀국 뒤 형제와 상의해 노속들에게 토지 일부를 나누어 주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1917년 2월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1918년 신한청년당 창당에 참여해 기관지 『신한청년』 발간을 맡았고 대한적십자회 상의원도 지냈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1924년 회계검사원 검사장, 1926년 국무위원, 1927년 군무부장을 지냈습니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이사 14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2년 5월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옮겨 가자 재무장을 맡았습니다. 1934년 4월 국무원 비서장에 선출되었고 6월 29일 항저우 광자병원에서 순국하니 향년 47세였습니다. 고향 함평 구봉마을에는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중국 항저우 호산당 예수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978년 아파트 건립 과정에서 유실되었습니다. 현재 고향 함평 구봉마을 기념관 인근에 1993년 항저우 현장의 흙을 가져와 조성한 합장묘가 있습니다.
부인 최혜순(간호사 출신 독립운동가, 2010년 애족장 추서)과의 사이에 두 딸 김미경·김혜경이 있다고 합니다. 조카 김석·김덕근도 항일운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