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배따라기」를 쓴 한국 근대소설의 선구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

| 생몰 | 1900 ~ 1951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전주 김씨 |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은 평양에서 태어난 소설가·문학평론가로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입니다.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이자 개신교 장로였던 김대윤이며, 이복형 김동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1914년 일본에 유학했고, 1919년 2월 도쿄에서 주요한과 함께 한국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며 단편 「약한 자의 슬픔」으로 등단했습니다.
1919년 도쿄 2·8 독립 선언 행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풀려났고, 같은 해 3·1 운동 때 동생이 쓸 격문을 대신 지어 준 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감자」「배따라기」「붉은 산」 등의 단편과 장편 『젊은 그들』을 남겼으며, 현대적 문체의 단편소설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돌아서 1939년 북지황군 위문 문단사절로 활동하고 조선문인보국회에 참여했으며,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학병 권유 글을 썼습니다. 이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됩니다. 1951년 6·25 전쟁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문학비가 있습니다.
김동인은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해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한국어에서 발달하지 않았던 3인칭 대명사를 처음 쓴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일제강점기 후반의 친일 활동이 기록되어 있어, 문학적 성취와 친일 행적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광복 후에는 전조선문필가협회 결성을 주선하는 등 우파 문단 활동을 했습니다.
이복형 김동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안창호의 측근이었습니다. 본관 전주 김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