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문신, 상락부원군
| 생몰 | 1520 ~ 1593 |
| 시대 | 조선 |
| 본관 | 상산 김씨 |
김귀영(金貴榮, 1520~159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주(상산), 자는 현경, 호는 동원(東園)입니다. 154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7년 명종 2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듬해 예문관 대교가 되어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홍문관 저작·박사·수찬, 사간원 정언 등을 거쳤습니다.
1555년 이조좌랑 때 을묘왜변이 일어나 도순찰사 이준경의 종사관으로 광주에 갔다 온 일이 있습니다. 1558년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올랐고, 1561년 춘천부사, 1564년 대사헌이 되었습니다. 윤원형이 몰락한 1565년에는 그의 죄를 묻는 일에 참여했고, 선조 즉위 후 1568년 도승지를 거쳐 예조판서가 되었습니다.
병조판서·이조판서와 대제학, 지경연사를 두루 맡았고 1581년 우의정, 1583년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 처리에 공이 있어 평난공신 2등에 책록되고 상락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천도 논의가 있자 한성을 지키며 명나라의 원조를 기다리자고 주장했으나 천도가 결정되어 임해군을 모시고 함경도로 피난했습니다. 회령에서 국경인의 반란으로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가 되었고, 풀려난 뒤 강화를 요구하는 글을 전하러 행재소에 갔다가 탄핵을 받아 회령으로 유배되던 도중 159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숙종 때 영의정 허적의 건의로 신원되었습니다.
임해군을 모시고 함경도로 피난한 김귀영은 회령에서 포로가 되었고, 풀려난 뒤 왜군이 요구한 강화문서를 행재소에 전하려다 사헌부·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습니다.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났고 숙종 때 신원되었습니다. 평가는 엇갈릴 수 있는 사건이므로 사실만 적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 상산 김씨 항목은 김귀영을 김득제의 9세손으로 소개합니다.
위키백과에는 본관이 상주로 적혀 있으며, 상주의 옛 이름이 상산이어서 상산 김씨와 같은 집안입니다.
1583년 좌의정에 올랐고 상락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