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배 金得培

고려 말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운 문신·무장, 고려 16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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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12 ~ 1362
시대고려
본관상산 김씨

생애 약력

김득배(金得培, 1312~1362)는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무장으로, 호는 난계(蘭溪)이며 상주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판전의를 지낸 김록이고, 《고려사》는 김록의 어머니 김만궁이 어린 시절 호랑이의 보호를 받았다는 일화를 싣고 있습니다. 김득배는 과거에 급제해 예문검열이 되었고 이어 전객부령을 지냈습니다.

공민왕이 즉위한 1351년 우부대언이 되었으나 이듬해 찬성사 조일신 등의 무고로 원나라 사신에 의해 파면되었다고 합니다. 1357년 서북면 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에 임명되고 추밀원직학사를 거쳐 서북면도순문사 겸 서경윤이 되었고, 1359년 첨서추밀원사를 거쳐 동지추밀원사가 되었습니다.

1360년 홍건적이 고려 서북면을 침입했을 때 경천흥·안우 등과 함께 그들을 물리쳤고, 그 공으로 수충보절정원공신에 정당문학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홍건적이 다시 20만 무리로 압록강을 건넜을 때에는 도병마사로 절령책에서 맞섰으나 크게 패했습니다. 1362년 1월 개경을 되찾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총병관 김용이 정세운을 시기해 안우·이방실·김득배에게 정세운을 죽이게 한 뒤 이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고, 김득배는 정세운 살해를 반대했으나 안우 등이 결국 정세운을 죽였습니다. 김용의 사주로 쫓기던 김득배는 상주에서 붙잡혀 1362년 3월 1일 효수되었습니다. 51세였습니다.

고려 16공신

고려 16공신은 태조 때 공신 등 고려의 이름난 공신 16명을 꼽는 말로, 위키백과 목록 13번째에 정당문학 김득배가 올라 있습니다. 정몽주의 이름도 마지막 16번째에 있습니다.

정몽주의 제문

당시 직한림이던 정몽주는 김득배가 주관한 과거의 문생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게 해 달라고 왕에게 청하고 직접 제문을 지어 억울한 죽음을 애도했다고 전합니다. 제문에서는 공이 큰 사람이 칼날 아래 피를 흘린 데 하늘에 묻는다는 취지로 슬픔을 드러냅니다. 이 일화는 이 사이트의 정몽주 항목과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몽주가 과거 문생으로서 시신 수습을 청하고 제문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후손

위키백과에 따르면 사위는 직강 조운흘이고, 부인은 서흥 김씨 김세구의 딸이며 아들은 미상입니다. 아우 김득제는 화산에 유배되었고 상산군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김득배 자주 묻는 질문

김득배의 본관은 어디인가요?

상주(상산) 김씨입니다. 아버지는 김록, 할아버지는 김일로 소개됩니다.

김득배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요?

홍건적을 물리친 뒤 김용의 모함으로 쫓기다 1362년 3월 상주에서 붙잡혀 효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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