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청백리로 뽑힌 대사헌, 시호 충정
| 생몰 | 1562 ~ 1636 |
| 시대 | 조선 |
| 본관 | 상산 김씨 |
김덕함(金德諴, 1562~163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산, 자는 경화, 호는 성옹(醒翁), 시호는 충정(忠貞)입니다. 이조참판 김홍의 아들로, 1588년 진사로 증광문과에 급제했습니다. 같은 집안의 김덕겸이 형으로 소개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으고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고, 광해군 때 군기시정에 올랐습니다.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폐모론에 반대하다 남해로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인조반정으로 풀려난 뒤 집의, 대사성, 대사간 등을 지냈고 1636년(인조 14) 청백리로 뽑혀 대사헌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는 단분 형식의 봉분이며 앞에 상석과 향로석,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놓여 있습니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 비각 안에 있고, 송시열의 비문은 후손들이 이 집안을 어떻게 기렸는지 알려 주는 자료입니다. 송시열은 이 사이트의 송시열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에 묘와 신도비가 있으며 '김덕함 묘 및 신도비'로 1993년 10월 30일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두 차례 이장을 거쳐 1660년(현종 원년) 현 위치에 조성되었고, 신도비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김수항이 전액을 썼으며 증손 김유가 글씨를 맡아 1686년(숙종 12)에 세웠다고 합니다.
묘역에는 부인 경주 이씨와 합장되어 있습니다. 위키백과 상산 김씨 항목은 김덕함을 김덕겸의 아우, 손자 김우석(형조판서)의 할아버지로 소개합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청렴하고 깨끗한 관리로 뽑힌 사람에게 주던 칭호입니다. 김덕함은 1636년 청백리로 뽑혔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