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도원수, 호는 만취당, 시호 충장
| 생몰 | 1537 ~ 1599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안동 권씨 |
권율(1537~1599)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장수로 본관은 안동, 영의정 권철의 아들입니다. 자는 언신, 호는 만취당·모악, 시호는 충장입니다.
158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중 전주 이치 전투와 1593년 행주산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막아내 행주대첩의 주역으로 기억됩니다. 이후 도원수에 올랐고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습니다.
권율은 40대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1582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고 전합니다. 사위 이항복의 급제가 계기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자료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사위로 이항복이 전해집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서 군사를 모았으나 1592년 용인 전투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이후 독성산성에서 일본군의 공세를 막았고, 같은 해 전주 이치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한 전투가 알려져 있습니다.
1593년 2월 행주산성에서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끈 대군을 물리친 전투가 행주대첩으로, 임진왜란 4대 대첩의 하나로 꼽힙니다. 이후 도원수에 올랐다고 합니다.
1596년 이몽학의 난 진압에 참여했고, 정유재란 때는 울산과 순천 방면 공격에 나섰으나 명나라 장수들의 비협조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1599년 병으로 사직한 뒤 별세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충장사와 기공사 등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한편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견해도 함께 소개됩니다. 아버지 권철은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고향에서 별세했다고 전하며,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주의 충장사와 행주의 기공사 등에서 기려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