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권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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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安東 權氏) — 경북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권씨로, 시조 권행을 안동 삼태사의 한 사람으로 모신다고 전하는 대표적인 명문 계열입니다.

인구 — 약 696,317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안동 권씨란

경북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권씨로, 시조 권행을 안동 삼태사의 한 사람으로 모신다고 전하는 대표적인 명문 계열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안동 권씨 인구는 약 696,31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권씨라도 본관(안동)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추밀공파, 복야공파, 부호장공파, 좌윤공파, 부정공파, 시중공파, 별장공파, 동정공파, 검교공파, 수중공파, 급사중공파, 중윤공파, 군기감공파, 정조공파, 호장공파

추밀공파 (樞密公派)

추밀공파는 시조 권행(權幸)의 10세인 권수평(權守平, ?~1250)을 파조로 합니다. 권수평은 고려 고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올랐으며, 남의 토지를 맡아 경작하다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돌려준 청렴한 일화가 『고려사』 열전에 전합니다.

안동 권씨 15개 파 가운데 가장 큰 파로 꼽힙니다. 영가부원군 권부(權溥), 여말선초의 학자 권근(權近)과 그 아들 권제(權踶)·손자 권람(權擥), 선조 때 영의정 권철(權轍)과 그 아들 도원수 권율(權慄)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권부의 아버지 권단(權旦, 1228~1311)은 찬성사를 지냈고, 권부의 후손에서 조선 세조비 정희왕후의 선조가 나왔다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는 이 파의 권정주 등이 입향해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하나, 지금은 개발로 흔적이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파조 이하 대수는 자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복야공파 (僕射公派)

복야공파는 권수평과 같은 시조의 10세인 권수홍(權守洪)을 파조로 하며, 추밀공파 다음으로 후손이 많은 파로 꼽힙니다.

권수홍의 손자 권책(權頙)은 첨의평리를 지냈고, 권책의 아들 권한공(權漢功)은 도첨의정승에 올라 예천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조선 초 영의정부사 권중화(權仲和), 중종·인종 때 우찬성 등을 지낸 권벌(權橃)도 이 파의 인물로 꼽힙니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은 안동에 사는 권씨의 다수가 복야공파라고 설명합니다. 권수홍의 후손 권인이 조선 건국 후 벼슬을 버리고 서후면 송파(교리)에 정착했고, 권사빈(1449~1535) 대에 북후면 도촌리로 옮겼으며, 아들 권벌은 봉화 유곡리(닭실마을), 다른 아들들은 예천 저곡리로 이거했다고 합니다. 『영가지』를 편찬한 권기, 이황의 문인 권호문도 이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부호장공파 (副戶長公派)

부호장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시중(權時中)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파 이름은 고려 때 지방 향리직인 부호장(副戶長)에서 나온 것으로, 안동 권씨 대종회가 정리한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근현대 인물로는 정치인 권정달(權正達)과 권중동(權重東) 등이 이 파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 풍천면 가곡리에는 이 파의 서주공파 계열이 자리 잡았다고 소개됩니다. 권항(1403년 평해 출생)이 풍산 류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가곡리에 정착했고, 후손에 도승지를 지내다 갑자사화 때 화를 입은 권주, 학문으로 사림의 추앙을 받은 병곡 권구(1672~1749)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는 남선면 신석리에 산다고 합니다. 계통 분류는 자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좌윤공파 (佐尹公派)

좌윤공파는 시조의 10세 권지정(權至正)을 파조로 합니다. 권지정은 고려 때 호장을 지냈고, 아들 권세위(權世位)는 정용별장(精勇別將)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권세위의 6대손 권진(權軫, 1357~1435)은 형조·이조판서 등을 거쳐 세종 때 정승에 올랐습니다. 추밀공파·복야공파·시중공파와 함께 인물을 많이 배출한 파로 꼽힙니다.

부정공파 (副正公派)

부정공파는 고려 때의 부정공(副正公) 권통의(權通義)를 파조로 하며, 시조의 10세에서 갈라진 파입니다.

문종의 왕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아버지 화산부원군 권전(權專)과, 그의 아들로 예조판서를 지낸 권자신(權自愼)이 이 파의 대표 인물로 꼽힙니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 따르면 권전(경혜공, 1371~1441)은 파조 권통의의 5세손 권백종의 아들로, 단종 폐위 때 일족이 크게 화를 입었으나 살아남은 이들이 군위 등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안동에서는 와룡면 가야리·이상리·주하리 일대에 부정공파가 살고, 이황의 문인 권대기와 그의 아들 권우, 영조 때의 학자 권상일(1679~1760) 등이 이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시중공파 (侍中公派)

시중공파는 시조의 10세 권인가(權仁可)를 파조로 하며, 파조의 이름을 따 '인가파'로 부르기도 합니다. 화천군파는 이 파에서 다시 갈라진 분파입니다.

성종 때 좌리공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권함, 송시열의 제자로 기호학파의 중심이 된 권상하(權尙夏)와 그 아우로 이조판서를 지낸 권상유(權尙游), 헌종 때 영의정 권돈인(權敦仁)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권돈인은 권상하의 5대손으로 소개됩니다. 항렬은 다른 파와 달리 오행상생법을 쓴다고 하나(나무위키), 확인이 필요합니다. 안동에서는 일직면 광연리에 이 파의 권건 후손이 산다고 합니다.

별장공파 (別將公派)

별장공파는 시조의 10세 권영정(權英正)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1476년(성종 7)에 간행되어 현존 최고(最古)의 족보로 꼽히는 『안동권씨 성화보』에는 오늘날의 15개 파 가운데 추밀공파·복야공파와 함께 별장공파만이 수록되어 있어, 일찍부터 계보가 정리된 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정공파 (同正公派)

동정공파는 시조의 10세 권체달을 파조로 합니다. 파조 이름의 한자는 자료에 따라 權逮達 또는 權棌達 등으로 다르게 적힙니다.

근현대 인물로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권중휘(權重輝),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낸 권오기(權五琦),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권영진(權泳臻) 등이 이 파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에서는 남선면 구미리, 길안면 용계리, 풍산읍 막곡리 등지에 이 파 후손이 흩어져 산다고 합니다. 파조 이름은 대종회와 위키백과에서는 권체달로, 나무위키에서는 權採達(권채달)로 적습니다.

검교공파 (檢校公派)

검교공파는 권척(權倜)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 권씨의 다른 파들이 대부분 시조의 손자 권책(權冊)의 후손에서 갈라진 데 비해, 검교공파는 권인행의 또 다른 아들 권륜(權綸)에서 권응화(權應和)로 이어지는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근현대 인물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권영우(權寧禹)와 권오을(權五乙) 등이 이 파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에서는 풍천면 갈전리에 이 파 권준의 후손이 산다고 소개됩니다.

수중공파 (守中公派)

수중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수중(權守中)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중공파는 직계 종파(宗派)로 분류됩니다. 위키백과의 파 목록에서는 권우중이 대표 인물로 적혀 있습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급사중공파 (給事中公派)

급사중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형윤(權衡允)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급사중공파는 급사중(給事中)이라는 고려 관직명에서 이름을 딴 파로 보입니다. 나무위키는 현대 인물로 정치인 권노갑(성행계) 등을 소개하지만, 계통 표기는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중윤공파 (中允公派)

중윤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숙원(權叔元)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윤공파는 고려 때 중윤(中尹)계 관직과 관련된 이름으로 추정되나, 파명의 유래는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군기감공파 (軍器監公派)

군기감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사발(權思拔)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군기감공파는 무기 제작을 맡은 관청 군기감(軍器監)에서 이름을 딴 파로 보입니다. 소속 인물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정조공파 (正朝公派)

정조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대의(權大宜)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무위키는 이 파를 "광석공파"와 함께 표기하며, 디지털안동문화대전과 디지털도봉문화대전은 광석파로 적습니다. 같은 파의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호장공파 (戶長公派)

호장공파는 시조 권행의 10세 권추(權樞)을(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15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장공파는 고려 때 지방 향리 최고직인 호장(戶長)에서 이름을 딴 파로 보입니다. 소속 인물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수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권행(안동 권씨 시조·안동 삼태사), 권부(고려 후기 영가부원군), 권중화(조선 개국 후 영의정), 권근(양촌·입학도설), 권제(세종 때 우찬성), 권람(세조 때 좌의정), 현덕왕후(문종의 왕후·단종의 어머니), 권벌(충재·닭실마을), 권철(영의정), 권율(행주대첩 도원수), 권응수(영천성 탈환 의병장), 권호문(이황 문인·송암), 권상하(송시열 수제자), 권돈인(영의정), 권철신·권일신(초기 천주교), 권동진(3·1운동 민족대표 33인), 권오설(6·10 만세운동), 권기옥(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중현(을사오적)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안동 권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안동 권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권기옥 (1901~1988)독립유공자 · 중국방면 · 독립장(1977)

안동 권씨 친일 인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안동 권씨 계열 인물입니다.

권중현 (1854~1934)을사오적 · 농상공부대신 (친일반민족행위자)

안동 권씨와 시조 권행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경북 안동을 본관으로 합니다. 시조 권행(權幸)은 본래 신라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물리친 공으로 권(權)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전합니다.

안동 삼태사와 명문

권행은 김선평·장정필과 함께 안동의 삼태사(三太師)로 받들어집니다. 안동 권씨는 고려·조선을 거치며 많은 문신·학자를 배출했고, 현존하는 이른 족보인 《성화보》(1476)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시조 권행 전승과 성씨의 유래

시조 권행은 고창(지금의 안동) 일대의 토착 세력으로, 신라 김씨 계통이라는 전승이 있습니다. 후삼국기에 김선평·장정필(자료에 따라 장길로도 적음)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물리친 공으로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의 칭호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전투 시기는 927년으로 적은 자료와 930년으로 적은 자료가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고려사』에는 이름이 흔행(昕幸)으로 나온다고 하며, 태조가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權道)를 잘 취했다"고 칭찬하며 권(權)씨 성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성씨 하사 이야기는 후대에 전해 내려온 전승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시조의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다고 소개됩니다. 그 밖에 시조모가 양천 허씨 시조 허선문의 딸이라는 설명이나, 권행의 후손 가운데 훗날 금나라 시조로 이어지는 인물이 있다는 전승도 일부 문헌에 소개되지만,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전승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칭으로 영가 권씨·화산 권씨라고도 불립니다.

태사묘와 재사

안동 구도심의 태사묘는 김선평·권행·장정필 세 태사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983년(성종 2)에 세운 삼공신묘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안내되며, 안동 시내 북문동에 있다고 소개됩니다. 시조 묘소 곁 서후면 성곡리에는 권태사 묘와 재사(안동 권씨 능동재사)가 있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안내되지만, 지정 번호와 명칭은 자료마다 다르니 문화유산 포털에서 확인하세요.

15개 파와 성화보

안동 권씨는 시조의 10세 무렵에 크게 번성하며 15개 파로 갈라졌습니다. 안동권씨 대종회가 제시하는 파는 수중공파(종파)·부호장공파·추밀공파·복야공파·동정공파·좌윤공파·별장공파·부정공파·시중공파·급사중공파·중윤공파·군기감공파·정조공파(광석공파)·호장공파·검교공파이며, 별도로 지파종중도 소개됩니다. 파조의 한자 표기나 파 이름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추밀공파가 가장 큰 파이고 복야공파가 그다음으로 많지만, 안동 현지에 사는 권씨는 복야공파가 다수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1476년(성종 7) 간행된 『성화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로 알려져 있으며,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디지털도봉문화대전은 조선 초부터 간행 당시까지의 문과 급제자 1,794명 가운데 절반 남짓이 이 족보에 실렸다고 소개합니다.

세거지

안동 안에서는 서후면 교리, 북후면 도촌리, 풍천면 가곡리, 와룡면 주하리·이상리·가야리, 임하면 임하리, 풍산읍 막곡리 등이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소개됩니다. 복야공파의 권사빈 대에 송파에서 도촌리로 옮겼고, 아들 권벌은 봉화 유곡리(닭실마을)로, 다른 아들들은 예천 저곡리로 옮겨 갔다고 합니다. 영덕 영해 일대, 강릉(죽헌동 등), 경기 양평 수곡리,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제기동, 대전·충청, 호남, 경남 등에도 집성촌이 있고, 분단 이전에는 황해도·평안도·함경도 등에도 세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는 추밀공파 계통이 일찍 자리 잡았으나 개발로 세거지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고 소개됩니다.

닭실마을과 서원·유적

봉화 닭실마을은 권벌 종가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오래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권벌이 1526년 지은 청암정과 석천계곡 일대는 명승으로 안내되며(지정 번호는 자료마다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마을 박물관에는 『충재일기』 등 유물이 보관된다고 합니다. 권벌은 봉화 삼계서원에 모셔졌습니다. 안동에는 권호문을 모신 청성서원과 관물당, 권위를 모신 도계서원, 부정공파 종가가 있는 와룡면 일대, 풍천 가곡리의 유적 등이 있고, 양평 지평면에는 수곡서원이 언급됩니다. 음성 생극면 방축리에는 권근·권제·권람의 묘역이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소개됩니다.

주요 인물

고려에서는 시조 권행 이후 권부가 영가부원군으로 성리학 수용에 이바지했다고 평가됩니다. 조선 초에는 권중화(영의정), 권근(《입학도설》), 그의 아들 권제와 손자 권람(좌의정)이 이어졌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도 안동 권씨입니다. 조선 중기에는 권벌, 영의정 권철, 행주대첩의 권율, 영천성을 되찾은 권응수, 이황의 문인 권호문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송시열의 수제자 권상하, 영의정 권돈인, 초기 천주교의 권철신·권일신 형제가 있습니다. 근현대에는 3·1운동 민족대표 권동진, 항일 비행사 권기옥, 6·10 만세운동의 권오설이 알려져 있으며, 권중현은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종회와 족보

안동권씨 대종회(http://andongkwon.org/)는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22길 11 안동권씨 회관(전화 02-2695-2483~4)과 안동 태화동의 화수회관(전화 054-854-2256)에 사무소를 두는 것으로 안내됩니다. 연락처는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세요. 별도의 안동권씨 종보사 사이트(http://www.andongkwon.or.kr/)에서 인터넷 대동보를 열람할 수 있다고 소개되는데, 이용 방법과 범위는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인구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집계로 안동 권씨는 2000년 629,291명, 2015년 696,317명으로 전국 성씨·본관 가운데 11위입니다(나무위키는 696,319명으로 적음).

항렬에 대해

일부 자료에는 31세부터 40세까지 항렬자가 이름 가운데에 오고(31세 병·32세 중·33세 태·34세 영·35세 오·36세 혁·37세 순·38세 용·39세 구·40세 승으로 소개), 41~50세는 이름 끝, 51~60세는 다시 가운데에 온다는 설명이 있으며 오행상생을 쓰는 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와 계마다 달라 위키백과는 세대별로 후보 글자를 여럿 제시하고, 대종회 사이트의 항렬표 메뉴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항렬은 문중 족보나 종친회에 문의하세요.

참고 영상

한국의 성씨 22회 안동 권씨 | STB상생방송
안동 권씨 시조 고려 개국공신 권행 장군의 삶과 흔적들 | STB상생방송 한국의 성씨
안동 권씨 성화보를 통해 알아보는 족보 읽는 법 |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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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안동)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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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시조 계보도태사 권행 → 권수평 → 권부 → 양촌 권근 · 권율 · 15파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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