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문신, 《입학도설》·《양촌집》 저자, 호는 양촌
| 생몰 | 1352 ~ 1409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안동 권씨 |
권근(1352~1409)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사숙, 호는 양촌, 시호는 문충입니다. 이색과 정몽주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건국 뒤 개국원종공신이 되었고, 1396년 명나라와 표전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을 때 사신으로 가 해명했습니다. 태종 때는 대제학에 올랐고 좌명공신으로 길창군에 봉해졌습니다. 저술로 《입학도설》·《양촌집》 등이 있습니다.
권근은 이색과 정몽주의 문하에서 배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공민왕 말기에는 정몽주 등과 함께 배원친명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138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공양왕 즉위 후 문서 문제로 유배되었고, 유배 중에 《입학도설》을 지었습니다.
조선 건국 후 태조의 명으로 정릉 비문을 짓고 중추원사가 되었습니다. 1396년 명나라가 표전(表箋) 문제를 들어 항의하자 사신으로 가서 해명했고, 함께 간 이들은 억류되었으나 권근만 귀국했다고 전합니다. 귀국 후 개국원종공신으로 화산군에 봉해졌습니다.
정종과 태종 때 대사헌·참찬문하부사·찬성사를 거쳐 대제학에 올랐습니다. 태종 즉위 후 좌명공신이 되어 길창군에 봉해졌고, 1407년 문과 중시의 독권관으로 변계량 등을 뽑았다고 합니다.
대표 저술은 《입학도설》·《양촌집》이며, 《동국사략》·《오경천견록》·《응제시》·《상대별곡》 등도 그의 작품으로 소개됩니다. 《입학도설》은 그림을 곁들여 성리학 개념을 설명한 책으로 평가되며, 후대 이황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권희, 아들로 권규·권제 등이 있고 손자는 권람입니다. 서거정은 외손자로 소개됩니다. 영의정 권철과 도원수 권율도 그의 후손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일대에 권근·권제·권람의 묘역이 있고, 이 묘역 일대가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소개됩니다(권람 항목 기준). 정확한 묘의 위치는 문중에 확인하세요.
명문 후손이 많이 나온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