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의 셋째 아들, 세조 때 영의정, 좌익공신, 시호 열성
| 생몰 | 1407 ~ 1467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장수 황씨 |
황수신(1407~1467)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수이며, 황희의 셋째 아들입니다. 자는 수효 또는 계효, 호는 나부·췌부, 시호는 열성입니다. 과거에 낙방한 뒤 음서로 관직에 나갔고 다시 과거를 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계유정난(1453) 이후 수양대군(세조)을 지지해 1455년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고 남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67년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부자가 영의정을 지낸 셈입니다.
황수신은 계유정난 뒤 세조 정권에서 공신이 되어 영의정까지 올랐고, 세조의 명으로 불경 언해 사업을 주관했다고 전합니다. 풍채와 인품이 좋고 성품이 원만해 민심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반면 단종을 몰아낸 정변에 협조해 출세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1447년 임원준을 부정하게 천거했다가 고신을 빼앗긴 일, 1462년 아산의 전지를 무단 점거했다는 탄핵을 받은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황희의 청렴한 이미지와 비교되며 평가가 갈립니다. 젊어 기방을 드나들던 그를 황희이 손님처럼 맞아 뉘우치게 했다는 일화는 전승입니다.
정확한 묘소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황희, 형은 황치신·황보신, 동생은 황직신입니다. 손자로 황신·황찰·황성·황욱이 전하며, 후손은 열성공파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전북 장수의 창계서원에 제향되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