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황씨(長水 黃氏) — 명재상 황희 정승을 배출한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황씨 명문으로 전해집니다.
명재상 황희 정승을 배출한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황씨 명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장수 황씨 인구는 약 170,988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황씨라도 본관(장수)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호안공파는 영의정 황희(黃喜)의 맏아들 황치신(黃致身, 1397~1484)을 파조로 합니다. 황치신은 음서로 출사해 동부승지, 예조참의, 한성부판윤, 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1444년 호조판서에 올랐고, 판중추부사를 지냈습니다.
사후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호안(胡安)입니다. 황희의 네 아들 대에서 갈라진 장수 황씨 4파 가운데 장파입니다.
소윤공파는 황희의 둘째 아들 황보신(黃保身)을 파조로 합니다. 황보신의 아들로 황우형·황종형·황경형·황공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성공파는 황희의 셋째 아들 황수신(黃守身, 1407~1467)을 파조로 합니다. 황수신은 계유정난을 지지해 좌익공신에 녹훈되고 남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67년 영의정에 올라 부자가 2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정승에 오른 드문 인물로 꼽히며, 세조의 명으로 『법화경』 언해를 주관했습니다. 시호는 열성(烈成)입니다.
사직공파는 황희의 넷째 아들로 사직(司直)을 지낸 황직신(黃直身)을 파조로 합니다. 아들로 황삼외(黃三畏)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장수 황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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