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관찰사를 지낸 문신으로 감사공파 파조, 세종 지역 입향조 장경지의 아버지

| 생몰 | 1367 ~ 1422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흥덕 장씨 |
장윤화(1367~1422)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흥덕이며 전라도 흥덕현 출신입니다. 1388년(우왕 14) 문과에 급제했는데 지공거가 정도전과 권근이었다고 합니다. 1398년 감승으로 있을 때 순군에 갇혔다가 풀려났으나 소유한 전민을 공가에 몰수당했고, 1413년 강원도·영길도 경차관으로 나가 민간의 폐단을 바로잡는 일을 맡았습니다.
1418년 사헌부집의로서 안성군수 권상온을 탄핵했다가 파직되고 하옥되었으나 곧 직첩을 돌려받았습니다. 세종 즉위 뒤에는 의금부진무로 일하며 태종의 신임을 얻었고 판예빈시사와 지병조사를 거쳐 병조참의로 승진했으며, 친척 박은이 여러 차례 천거해 판전사에 임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419년 이조참의를 거쳐 1420년 전라도관찰사에 올랐습니다.
1421년 전라도수군처치사 박초와 영암군수 박희중이 비리 50여 조목을 폭로했고, 그는 권세가에게 뇌물을 바치며 구명 운동을 벌였으며 증거를 없애려 감영 창고에 불을 질렀다는 혐의를 받아 파직되었습니다. 1422년 부여에 귀양 가 있던 중 사망했습니다. 『세종실록』 졸기는 사무에 민첩했으나 재물을 탐내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평가합니다. 세종시 흥성장씨는 그를 파조로 하는 감사공파이며 아들 장경지가 입향조입니다.
세종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입향조 장경지(1394~?)는 어머니가 함안 윤씨, 부인이 강릉 김씨이며 계공랑 종부시직장 겸 상서녹사를 지냈습니다. 연서면 와촌리 번암터에 정착한 뒤 마을이 한때 '장씨촌'이라 불릴 만큼 흥성장씨가 모여 살았고, 정확한 입향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강릉 김씨가 쌍류리에 사는 점으로 보아 혼인에 따른 입향으로 봅니다. 후손은 19세기 중엽 연동면 노송리로도 이거했습니다.
아들 장경지(1394~?)가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번암터에 정착해 흥성장씨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전라도관찰사(감사)를 지낸 장윤화를 파조로 합니다.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의 흥성장씨가 이 파입니다.
사무에 민첩했으나 재물을 탐내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