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 장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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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 장씨(興德 張氏) — 전북 고창군 흥덕면을 본관으로 하며 흥성 장씨라고도 하는 성씨입니다. 시조 장유는 후백제 상질현 출신으로 광평시랑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인구 — 약 59,396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흥덕 장씨란

전북 고창군 흥덕면을 본관으로 하며 흥성 장씨라고도 하는 성씨입니다. 시조 장유는 후백제 상질현 출신으로 광평시랑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흥덕 장씨 인구는 약 59,396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장씨라도 본관(흥덕)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흥덕 장씨와 흥성 장씨

흥덕 장씨(興德 張氏)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을 본관으로 하며 흥성 장씨라고도 불립니다. 위키백과와 나무위키는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흥덕 장씨 37,423명과 흥성 장씨 21,973명을 합쳐 59,396명으로 집계된다고 적고 있고, 2000년 조사는 44,705명(14,023가구)이었으며 1985년에는 37,691명(8,837가구)이었습니다. 통계에서는 두 표기가 나뉘어 있으나 시조와 유래가 같아 하나의 집안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순창·세종 같은 지역별로는 입향조와 파조가 따로 전해집니다.

시조 장유와 본관의 유래

시조 장유(張儒)는 후백제 영주(현 고창군) 상질현(현 흥덕면) 출신으로, 고려시대에 광평시랑을 지냈다고 합니다. 신라 말 후삼국의 난을 피해 오월(吳越)로 건너가 중국어를 익혔고,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한 뒤 귀국해 광종 때 예빈성에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전담했다고 전합니다.

장유가 나고 자란 상질현이 흥성으로 바뀌고 6세손 장기(張機)가 흥산군(興山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본관을 흥성으로 삼았으며, 흥성이 흥덕으로 바뀌면서 흥덕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고 설명됩니다. 개칭 연도는 1308년(충선왕 1)으로 보는 자료와 1298년으로 보는 자료가 있고, 세종시 문화대전은 왕의 이름 '장(璋)'과 음이 같아 고쳤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연도는 병기합니다.

흥덕이라는 지명의 변천

흥덕은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일대입니다. 위키백과는 백제 때 상칠현(상촌현)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상질현으로 고쳐 고부군에 속했고, 1018년(고려 현종 9) 장덕현으로 바뀌어 고창을 겸해 다스렸으며, 1308년(충선왕 1) 흥덕으로 개칭되었다고 정리합니다. 1401년(태종 1)에 고창현에서 분리되어 흥덕현으로 독립했고(흥성현이라고도 함), 1895~1896년 전주부 흥덕군을 거쳐 전라남도 흥덕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흥덕면이 되어 고창군에 통합되었습니다. 본관 이름이 흥성과 흥덕 두 가지로 쓰이게 된 것도 이런 지명의 변천 때문이라고 설명됩니다.

주요 파(派)

감사공파, 사성공파, 진사공파, 나주 장씨(분관)

감사공파 (監司公派)

감사공파는 전라도관찰사(감사)를 지낸 장윤화(張允和, 1367~1422)를 파조로 합니다.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의 흥성장씨가 이 파이며, 입향조는 장윤화의 아들 장경지(1394~?)입니다. 장경지는 어머니가 함안 윤씨, 부인이 강릉 김씨이고 계공랑 종부시직장 겸 상서녹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장경지가 연서면 와촌리 번암터에 정착한 뒤 마을은 한때 '장씨촌'이라 불릴 만큼 흥성장씨가 많이 살았고, 그의 묘소는 와촌리 대실 앞 선산에 있습니다. 정확한 입향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혼인 관계에 따른 입향으로 봅니다. 후손은 19세기 중엽 연동면 노송리로도 이거했고, 통훈대부 예산현감을 지낸 장승중이 알려져 있습니다. 파조 장윤화는 비리 혐의로 파직되어 귀양지에서 숨진 인물이어서 『세종실록』 평가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파별 계보와 대수 표기는 위키백과·지역 문화대전 등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한 세계는 흥덕 장씨 대종회의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집안마다 입향 시기와 파 소속이 달라 종친회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성공파 (司成公派)

사성공파는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흥덕 장씨의 대부분이 속한 파로, 순창문화대전은 '사성공파(司成公派)'와 '진사공파(進士公派)'를 모두 장경세의 후손으로 정리합니다. 사성은 성균관의 종3품 벼슬 이름이어서 파조가 이 관직을 지냈거나 추증된 인물일 가능성이 있으나, 파조의 이름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순창 흥덕 장씨는 남원의 토성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로, 장경세의 입향 이후 수정리를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광복 이전에는 100여 가구에 이르렀으나 산업화와 교육·취업을 위한 이거로 줄어 2000년 121가구 329명, 2011년 동계면 52가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재실 전성재와 풍악산 향로봉 아래 선영이 있습니다. 파별 계보와 대수 표기는 위키백과·지역 문화대전 등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한 세계는 흥덕 장씨 대종회의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집안마다 입향 시기와 파 소속이 달라 종친회 확인이 필요합니다.

진사공파 (進士公派)

진사공파는 순창 동계면 수정리 흥덕 장씨 가운데 사성공파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가 속한 파로 소개됩니다. 순창문화대전은 두 파 모두 수정리에 뿌리를 둔 장경세의 후손이라고 설명합니다. 진사는 소과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여서 파조가 진사시에 합격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파조의 이름과 세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순창 지역에서는 수정리 외에 동심리에도 흥덕 장씨가 사는데, 동심리 입향조와 입향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고 수정리에서 나간 가닥으로 봅니다. 수정리 가호 형성 연도는 원문의 연호 표기가 맞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별 계보와 대수 표기는 위키백과·지역 문화대전 등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한 세계는 흥덕 장씨 대종회의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집안마다 입향 시기와 파 소속이 달라 종친회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주 장씨(분관) (羅州 張氏)

나주 장씨는 흥덕 장씨 시조 장유의 22세손 장세동(張世東)이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를 지내고 세거지인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분관한 것으로 위키백과가 소개합니다. 따라서 파라기보다는 흥덕 장씨에서 갈라져 나온 별도 본관이며, 이 때문에 나주 장씨는 흥덕 장씨의 후손으로 이해됩니다.

나주는 같은 전라도 서남부로 흥덕과 가까운 지역입니다. 장지량이 나주에서 태어났고 장병완도 나주 출신으로 소개되는 점이 이 지역과 집안의 인연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들이 나주 장씨인지 흥덕 장씨인지는 인물 문서의 본관 표기에 따랐으며, 장세동의 상세한 행적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별 계보와 대수 표기는 위키백과·지역 문화대전 등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한 세계는 흥덕 장씨 대종회의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집안마다 입향 시기와 파 소속이 달라 종친회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장유(시조), 장연우(거란 침입 때 현종 호종), 장윤화(전라도관찰사), 장경세(강호연군가), 장지량(제9대 공군참모총장), 장명선(외환은행장), 장영달(국회의원), 장태평(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대환(매일경제 회장), 장병완(기획예산처 장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선대 장연우

시조의 아들 장연우(954~1015)는 1011년 거란 침입 때 현종을 끝까지 호종해 중추사와 판어사대사가 되었고, 1015년 호부상서에 올랐다가 상서우복야에 추증되었습니다. 고창군 성내면에 그의 제각과 신도비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조선의 장윤화와 장경세

조선 전기의 장윤화는 1388년 문과에 급제해 전라도관찰사에 올랐으나 비리 혐의로 파직되어 부여에서 별세했고, 세종시 흥성장씨의 감사공파 파조가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장경세는 「강호연군가」 12곡과 『사촌집』을 남긴 문신으로 순창 동계면 수정리 흥덕 장씨의 입향조로 알려지며 남원 주암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위키백과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냈다고 하나 순창문화대전은 8명이라고 적어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의 인물들

현대에는 장지량이 공군 창설에 참여해 제9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고, 아들 장대환은 매일경제신문 회장입니다. 금융계에서는 외환은행장과 호남대 총장을 지낸 장명선이, 정치·행정에서는 장영달, 장태평, 장병완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 현존 인물은 위키백과 등에 공적으로 소개된 사실만 담았습니다.

순창과 남원, 세종의 세거

흥덕 장씨는 남원의 토성(土姓)이어서 "남원의 흥덕 장씨"로도 불립니다.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가 대표적 세거지로, 장경세가 할아버지 장응량의 여묘를 계기로 정착했다고 전하며 2000년 순창 흥덕 장씨는 121가구 329명이었습니다. 1960년 중건한 재실 전성재와 풍악산 향로봉 아래 선영이 있습니다.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번암터에는 장윤화의 아들 장경지가 정착해 집성촌을 이루었고, 후손은 연동면 노송리에도 살고 있습니다.

집성촌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집성촌은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와 대산면, 정읍시 소성면 중광리,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진서면 석포리, 장흥군 유치면 반월리,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장선리, 영광군 법성면 월산리, 화순군 북면 길성리 등 전북과 전남 일대입니다. 광주 만귀정(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도 이 집안과 관련해 소개됩니다.

나주 장씨의 분관

시조의 22세손 장세동이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를 지냈고, 세거지인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나주 장씨로 분관했다고 합니다. 흥덕 장씨 대동 항렬은 19세 '진·석·전', 20세 '순·택', 21세 '식·주·근·병' 등으로 정해져 있다고 소개되나, 파마다 항렬이 다를 수 있으니 종친회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장씨 본관과의 구별

같은 장씨라도 본관이 다르면 시조와 뿌리가 다른 별개의 집안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안동 장씨, 인동 장씨, 단양 장씨, 덕수 장씨, 진천 장씨가 따로 정리되어 있으며, 흥덕 장씨 인물과 섞어 읽지 않도록 본관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족보를 찾는 순서

먼저 집안에 전하는 족보에서 시조 장유 이후의 세대수와 파 이름, 입향조의 이름을 확인합니다. 순창·남원 계통이라면 장경세와 사성공파·진사공파, 세종 계통이라면 장윤화와 감사공파가 기준이 되며, 항렬자로 자신의 세대를 짚은 뒤 흥덕 장씨 대종회와 지역 종친회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25개 파의 이름

위키백과는 시중공파·둔암공파·중직공파·직장공파·참봉공파·야우공파·송정공파·진사공파·사성공파·경력공파·서윤공파·사직공파·현령공파·좌랑공파·사과공파·부장공파·감사공파·제주파·곡성파·주부공파·돈암공파·기장공파·참군공파·판서공파·문간공파의 25개 파를 나열합니다. 이 중 파조와 내력을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것은 감사공파·사성공파·진사공파이고, 나머지는 이름만 소개합니다.

알아두면 좋은 점

연산군의 후궁 숙용 장씨(장녹수)를 흥덕 장씨로 적는 자료가 있으나, 위키백과 본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설명이 없어 이 페이지에서는 본관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인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또 파 이름만 전해지고 파조와 내력을 확인하지 못한 파(시중공파·둔암공파 등 20여 개)도 별도 설명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부 독립운동가 사전에 '흥덕 장씨'가 어머니 쪽 집안으로 적힌 경우가 있으므로 본인의 성씨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흥덕 장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흥덕)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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