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 장씨(德水 張氏) — 옛 경기도 개풍군(지금의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의 덕수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온 원나라 출신 장순룡(張舜龍)을 시조로 모십니다. 위구르계 귀화인이라는 설명이 널리 소개되지만 세부 출신은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집니다.
옛 경기도 개풍군(지금의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의 덕수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온 원나라 출신 장순룡(張舜龍)을 시조로 모십니다. 위구르계 귀화인이라는 설명이 널리 소개되지만 세부 출신은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덕수 장씨 인구는 약 24,18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장씨라도 본관(덕수)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파 구분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장순룡(시조), 장유(문장가·인선왕후 부친), 인선왕후(효종 비), 장신(정사공신), 귀인 장씨(인조 후궁), 귀인 장씨(고종 후궁)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덕수 장씨(德水 張氏)의 시조는 장순룡(張舜龍, 1255~1297)입니다. 초명은 삼가(三哥)로 전하며, 부친 장백창(張伯昌)은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必闍赤, 문서 담당 관직)를 지냈다고 합니다. 장순룡은 1275년(충렬왕 1)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낭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밀직사·첨의참리 등을 지냈습니다. 덕수현(德水縣)을 식읍으로 받고 덕수(덕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하여 후손이 덕수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덕수는 옛 경기 개풍 일대의 지명으로, 자료에 따라 개성 판문구역 또는 개풍군 덕수리로 적혀 있습니다. 봉호도 자료에 따라 덕수부원군, 덕성부원군으로 달리 표기됩니다.
장순룡은 위구르계 귀화인으로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의 후예라는 설명이 붙기도 합니다. 위구르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덕수 장씨 족보와 《고려사》의 기록을 근거로 한다고 소개됩니다. 한편 나무위키 등에는 그가 본래 '회회(回回)' 사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대의 '회회'는 대체로 중앙·서아시아 출신 무슬림을 넓게 가리키는 말이어서, 위구르계라는 설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 위구르계 귀화인으로 임천 이씨의 이현, 경주 설씨의 설손이 함께 거론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민족 계통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전승과 기록 해석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한 덕수 이씨와는 같은 '덕수'라는 지명을 쓰지만 성씨와 계통이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덕수 장씨는 24,185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주요 집성촌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과 부천시가 소개됩니다. 그 밖의 세거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시조 장순룡은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怯怜口, 측근 수행 집단)로 고려에 파견되어 낭장에서 장군으로 승진했고, 원나라에서는 선무장군·진변관군총관 등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1292년 밀직사부지사, 1294년 밀직사동지사를 거쳐 첨의참리에 이르렀으며 1297년 재직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충렬왕의 명으로 원나라에 공녀를 보내고 공주의 장신구용 진주를 구하러 다녀오는 등 원과의 연락을 맡았다고 합니다. 권세와 사치를 두고 인후·차신 등 다른 측근과 다툰 일화, 저택 담장을 화려하게 꾸며 '장씨네 집 담장'이라 불렸다는 일화도 전합니다. 고려 시대 후손의 계보는 공개 자료에서 자세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 덕수 장씨는 문과 급제자 14명, 왕비 1명, 후궁 2명을 낸 것으로 소개됩니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장유로, 호가 계곡이며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히고 신풍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딸 인선왕후는 봉림대군(효종)의 비로 현종을 낳았습니다. 장유의 아우 장신은 인조반정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강화유수로서 강화 방어에 실패한 책임으로 자결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인조의 후궁 귀인 장씨도 이 가문 출신으로 소개됩니다.
고종의 후궁이자 의친왕의 생모인 귀인 장씨가 덕수 장씨로 전해집니다. 근대에는 한국 최초의 형법 교과서를 집필하고 변호사로 활동한 장도(1876~1950)와 같은 법조인이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중추원 참의를 지내 친일 명단에 오른 인물도 여럿 있어 평가가 갈립니다. 현대 인물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장경우 등이 덕수 장씨로 소개됩니다. 화가 장욱진은 이름이 같은 장씨이지만 결성 장씨로 소개되어 이 가문과 구별됩니다.
덕수 장씨의 파 구분과 각 파조는 이번에 확인한 공개 자료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정확한 계통은 종친회와 소장 족보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는 장유의 묘와 신도비가 있으며 시흥시 지정 문화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선왕후는 효종과 함께 여주의 영릉에 모셔져 있습니다.
《덕수장씨족보》가 위구르 출신 전승의 근거로 언급되지만, 종친회 조직과 항렬자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덕수 장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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