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 이씨(德水 李氏) — 충무공 이순신과 율곡 이이를 배출한 본관으로, 시조는 고려 무신 이돈수로 전해집니다.
충무공 이순신과 율곡 이이를 배출한 본관으로, 시조는 고려 무신 이돈수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덕수 이씨 인구는 약 58,513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이씨라도 본관(덕수)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문성공파, 충무공파, 참판공파, 율리공파, 용재공파, 문정공파, 문혜공파, 옥산공파
문성공파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를 파조로 합니다. 이이는 덕수 이씨 13세손으로 시호는 문성(文成)이며, 문묘와 종묘에 함께 배향되었습니다.
덕수 이씨는 조선 중기 이후 문인 계열과 무인 계열이 함께 번성한 것이 특징인데, 문성공파는 그 가운데 문인 계열을 대표하는 파로 꼽힙니다.
충무공파는 임진왜란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파조로 합니다. 이순신은 덕수 이씨 12세손으로 덕연부원군 이정(李貞)의 셋째 아들이며, 선무공신에 녹훈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영의정에 가증되었습니다.
이 파에서는 무과 급제자와 삼도수군통제사가 다수 배출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참판공파는 이순신의 맏형 이희신(李羲臣, 1535~1587)을 파조로 합니다. 이희신은 덕수 이씨 12세손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네 아들이 모두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넷째 아들 이완(李莞)은 의주부윤으로 정묘호란 때 전사하여 강민(剛愍)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후손들은 경기도 용인 수지 고기동 일대에 터를 잡았습니다.
율리공파는 이순신의 둘째 형 율리 이요신(李堯臣, 1542~1580)을 파조로 합니다. 이요신은 덕수 이씨 12세손으로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류성룡과 가깝게 교유하였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고 호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용재공파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용재 이행(李荇, 1478~1534)을 파조로 합니다. 이행은 사간 이의무(李宜茂)의 아들로, 연산군 때 폐비 윤씨 복위에 반대하다 유배되었으나 중종 때 다시 등용되어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시문과 글씨, 그림에 두루 뛰어났으며 시호는 문정(文定)이었다가 뒤에 문헌(文獻)으로 고쳐졌습니다. 그의 증손 이안눌과 현손 이식은 각각 문혜공파와 문정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문정공파는 조선 중기의 문신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을 파조로 합니다. 이식은 좌의정 이행의 현손으로, 대사헌·형조판서·예조판서 등을 지냈고 『선조실록』 수정을 맡았습니다.
신흠·이정구·장유와 함께 조선 중기 한문 4대가로 꼽히며, 시호는 문정(文靖)이고 1686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문혜공파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동악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을 파조로 합니다. 이안눌은 좌의정 이행의 증손으로, 광해군의 정치에 분개하여 물러났다가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예조참판·형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사후 좌찬성 겸 대제학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며, 담양 구산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옥산공파는 율곡 이이의 아우 옥산 이우(李瑀, 1542~1609)를 파조로 합니다. 이우는 명종 때 진사시에 급제하여 비안현감·괴산군수·고부군수를 거쳐 군자감정을 지냈습니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아 시·글씨·그림·거문고에 능해 '4절'로 불렸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이돈수(덕수 이씨 시조), 이순신(조선 무신, 충무공), 이이(성리학자, 호 율곡)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덕수 이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덕수 이씨 계열 인물입니다.
덕수 이씨(德水 李氏)는 개성 덕수(德水) 지역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입니다. 시조는 고려 고종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로 전하며, 4세 이윤운이 덕수부원군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덕수를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약 58,513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여러 분파가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3세손 율곡 이이를 파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와, 12세손 충무공 이순신을 파조로 하는 충무공파(忠武公派)입니다. 충무공파는 이순신의 영향으로 임진왜란 이후 이름난 무신 집안으로 자리 잡아, 무과 급제자 267명과 역대 삼도수군통제사 13명을 배출했고 종가는 아산 현충사 인근의 이순신 고택입니다. 문성공파는 율곡의 본가가 있던 황해도 해주 일대에서 이어져, 분단 뒤 월남한 후손이 남한에 소수 남아 있습니다.
덕수 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05명, 상신(정승) 7명, 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상신 7명과 대제학 4명은 연헌공파(蓮軒公派)에서 나왔고, 대제학 1명은 문성공파의 율곡 이이가 지냈습니다.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화폐 인물의 과반이 이 가문으로, 100원의 이순신, 5천 원의 율곡 이이, 5만 원의 신사임당(이이의 어머니)이 모두 덕수 이씨입니다.
계파·세계(世系)의 자세한 갈래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우리 집안 내력은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이돈수 → 12세 충무공 이순신 · 율곡 이이 계열덕수 이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덕수 이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