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장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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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씨(安東 張氏) — 고려 태조를 도운 안동 삼태사 가운데 한 분인 장정필을 시조로 하는 안동 본관의 장씨로,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 장사길, 『음식디미방』의 장계향, 장기려·장준하를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인구 — 약 39,939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안동 장씨란

고려 태조를 도운 안동 삼태사 가운데 한 분인 장정필을 시조로 하는 안동 본관의 장씨로,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 장사길, 『음식디미방』의 장계향, 장기려·장준하를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안동 장씨 인구는 약 39,93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장씨라도 본관(안동)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안동 장씨(安東 張氏)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안동 삼태사 가운데 한 분인 장정필(張貞弼)을 시조로 모시는 가문입니다.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로 『고려사』에는 이 이름으로 나오고, 시호는 충헌(忠獻)이라고 전합니다.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 병산 전투에서 김선평·권행과 함께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견훤의 군대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태사에 올라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하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39,939명입니다. 2000년에는 25,552가구 83,961명이었고 1985년에는 15,086가구 64,814명이었는데, 나무위키는 2015년 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이 조사 방법의 차이이며 스스로 안동 장씨로 알던 수만 명이 인동 장씨로 등록된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장씨 전체에서는 인동 장씨 다음가는 규모입니다.

가문은 크게 두 시기에 빛났다고 전합니다. 고려 말·조선 초에는 의주의 토호 출신 장사길이 위화도 회군과 조선 개국,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화산군에 봉해지고, 아우 장사정과 아들 장철도 공신이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안동 서후면에서 퇴계학맥을 이은 경당 장흥효와 그 딸 장계향(정부인 안동 장씨)이 나와, 장계향은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남겼습니다.

현대에는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학병 탈출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계』의 장준하, 시인 장만영, 외과의 장가용, 장애인 운동가 출신 국회의원 장향숙 등이 안동 장씨로 소개됩니다. 한자는 성씨 '張'을 쓰며, 같은 '장씨'라도 인동 장씨·덕수 장씨·단양 장씨와는 시조가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예컨대 여헌 장현광은 인동 장씨입니다.

주요 파(派)

화산군파, 부령군파, 예산군파, 청송군파, 지례백파, 진천군파, 이천백파, 울진부원군파, 희양공종파

화산군파 (花山君派)

화산군파는 안동 장씨의 대표 계열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장사길·장철 부자의 계열로 전해집니다. 장사길(張思吉, ?~1418)은 압록강 하류 의주의 토호 출신 무신입니다. 아버지는 의주만호 장열(『고려사』 표기 장려, 위키백과는 장려로 적음)이고 아우는 장사정입니다. 1382년 호발도의 의주 침입에 맞서다 화살을 맞았고, 1390년 위화도 회군에 가담해 회군공신이 되었으며 같은 해 이지란과 함께 서해도에서 왜구를 진압했습니다.

조선이 개국한 1392년 개국의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어 화령군에 봉해졌고,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대군 이방원 편에 서서 정사공신 2등에 올라 영가군에 봉해진 뒤 화산군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참찬문하부사, 우군도총제, 참찬의정부사 등을 지냈고 1418년에 별세했으며 시호는 희양(僖襄)입니다. 자녀로는 아들 장주, 딸 순혜옹주 장씨 등이 소개됩니다.

셋째 아들로 전하는 장철(張哲, ?~1399)도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고 1398년 정사공신 2등에 올라 화산군에 봉해졌으며 첨절제사·영흥부사·중추원부사를 지냈습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라고 합니다. 영어 위키백과는 장철을 장열의 손자로 적어 가계 표현이 자료마다 다르니,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 장사길의 묘가 있고 안동 장씨 문중이 이곳에서 시향을 올린다고 서울이코노미뉴스가 소개합니다. 후대의 대표 후손과 집성촌, 종친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동 입향조 장의는 장사길의 5세손으로 전하며, 서후면 일대의 세거와 경당 장흥효·장계향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안동 장씨 시조 계보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령군파 (扶寧君派)

부령군파(扶寧君派)는 위키백과가 안동 장씨의 주요 파로 가장 먼저 꼽는 화산군파 다음에 나열하는 계열입니다. 파 이름의 부령(扶寧)은 지금의 전북 부안을 가리키는 옛 이름(고려 시대 부령현)으로 알려져 있어, 부령군에 봉해진 인물에서 비롯된 파명으로 보입니다. 신아일보와 서울이코노미뉴스 같은 일부 언론 기사는 같은 파를 '부안군파'로 적고 있어, 표기가 엇갈리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 카페 게시글은 이 파를 '부령군파'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소개하기도 하므로 문서에 따라 파명이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예산군파 (禮山君派)

예산군파(禮山君派)는 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 카페 게시글 등 거의 모든 소개 자료가 안동 장씨의 주요 파로 꼽는 계열입니다. 파명의 예산(禮山)은 충청남도 예산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예산군에 봉해진 인물에서 파명이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화산군파·청송군파·부령군파 등과 함께 대표 파로 늘 함께 거론됩니다.

다만 예산군파의 파조가 누구인지, 장사길의 계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검색한 자료만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이코노미뉴스 기사가 개국공신 장사길을 소개하지만 예산군파의 파조라고 밝힌 것은 아니므로 장사길을 이 파의 파조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와 같은 충청 지역의 안동 장씨 집성촌이 소개되지만, 이 마을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청송군파 (靑松君派)

청송군파(靑松君派)는 위키백과와 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 카페 게시글에 모두 안동 장씨의 주요 파로 오르는 계열입니다. 파명의 청송(靑松)은 경상북도 청송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청송군에 봉해진 인물에서 비롯된 파명으로 보입니다. 안동과 이웃한 경북 지역에 연고가 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는 지명에 근거한 추정일 뿐 족보로 확인한 사실은 아닙니다.

인동 장씨에도 같은 지역명이 들어간 파가 있을 수 있어 이름만 보고 안동 장씨 청송군파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본관이 안동인지 족보에서 먼저 확인하세요. 같은 '장씨'라도 인동 장씨·덕수 장씨 등은 시조가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지례백파 (知禮伯派)

지례백파(知禮伯派)는 위키백과가 안동 장씨의 파로 올린 계열로, 파명의 지례(知禮)는 지금의 경북 김천시 지례면 일대인 옛 지례현(知禮縣)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백(伯)'은 지명에 붙는 봉작으로, 지례백에 봉해진 인물이 파를 연 것으로 보입니다. 신아일보와 카페 게시글은 같은 파를 '지예백파'로 적어 표기가 엇갈리는데, 지례와 지예 가운데 어느 쪽이 원전의 표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진천군파 (鎭川君派)

진천군파(鎭川君派)는 위키백과가 안동 장씨의 파로 꼽는 계열로, 파명의 진천(鎭川)은 충청북도 진천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충북 진천군은 신아일보나 나무위키 등에서 안동 장씨의 집성촌이 있는 지역으로 소개되는데, 이 집성촌이 진천군파와 직접 이어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명과 집성촌이 겹친다는 점에서 연고가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추정일 뿐입니다.

신아일보 등 일부 기사의 파 목록에는 진천군파가 빠져 있어 자료에 따라 소개 여부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파에 속하는지는 족보의 파계도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이천백파 (利川伯派)

이천백파(利川伯派)는 위키백과가 '이천백계(利川伯系)'라는 표기로 안동 장씨의 갈래 가운데 하나로 올린 계열입니다. 파명의 이천(利川)은 경기도 이천을 가리키는 지명이고, '백(伯)'은 이천백에 봉해진 인물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키백과는 '파'와 '계'를 섞어 쓰고 있어 대종회가 사용하는 정식 파명과 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은 안동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파조의 활동 지역과 후손의 세거지가 어디였는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이지만, 이번에는 이를 뒷받침할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울진부원군파 (蔚珍府院君派)

울진부원군파(蔚珍府院君派)는 위키백과가 안동 장씨의 파로 올린 계열입니다. 파명의 울진(蔚珍)은 경상북도 울진을 가리키며, 부원군(府院君)은 공신이나 왕의 장인 등에게 내리는 높은 봉작입니다. 따라서 울진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을 파조로 하는 파로 보이지만, 그 인물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혼동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인동 장씨(상장군계)에도 '울진파'가 있는데 파조가 장연으로 전해져, 이 파와는 별개의 계통입니다. 또 울진 장씨라는 독립된 본관도 따로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같은 집안으로 보지 말고, 반드시 본관이 안동인지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희양공종파 (僖襄公宗派)

희양공종파(僖襄公宗派)는 위키백과가 안동 장씨의 파 목록 끝에 올린 계열입니다. 파명의 희양(僖襄)은 장사길의 시호와 같은 글자여서, 장사길(희양공) 쪽 종가 계통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름에서 짐작한 것일 뿐 확인된 사실이 아니며, 화산군파와의 관계도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종파(宗派)'는 흔히 장손으로 이어지는 큰집 계통을 뜻하는 말입니다.

파조(파를 연 인물)의 이름·관직·생몰년, 대표 후손과 집성촌, 파 종회의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위키백과·신아일보·서울이코노미뉴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안동 장씨는 이 밖에도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하므로, 정확한 소속은 우리 집안 족보(『안동장씨대동속보』 등)의 파계도를 보거나 안동장씨중앙대종회에 문의해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장정필(안동 장씨 시조·안동 삼태사), 장사길(위화도 회군·개국공신, 화산군), 장철(정사공신 2등), 장사정(개국·정사공신), 장흥효(경당·퇴계학맥), 장계향(음식디미방), 장기려(한국의 슈바이처), 장준하(사상계·광복군), 장만영(시인), 장가용(외과의), 장향숙(17대 국회의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안동 장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안동 장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장준하 (1918~1975)학병 탈출 후 광복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사상계』 창간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건국훈장 애국장(1991)

시조 장정필과 안동 삼태사

시조 장정필의 출신에 대해서는 자료가 갈립니다. 『안동장씨대동속보』를 인용한 글은 888년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 장원의 아들로 태어나 당나라에서 문과에 급제하고 이부상서를 지냈다고 하고,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은 9세기 말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에 와 강릉과 안동에 머물렀다고 설명합니다. 장보고의 현손이라는 전승도 있으나 사료가 부족해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확실한 대목은 930년 고창 병산 전투에서 김선평·권행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운 일이며, 이 세 사람이 안동의 삼태사입니다. 계보는 안동 장씨 시조 계보도, 두 가문은 안동 김씨·안동 권씨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태사묘와 보물

안동시 북문동의 태사묘는 세 분을 모신 사당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1974년 지정)입니다. 고려 전기 안동 주민들이 삼태사의 공덕을 기려 사당을 세운 것이 시초로 전하며, 1542년 지금 자리로 옮겼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어 뒤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연도는 자료마다 조금 다릅니다). 경내에는 묘정비·숭보당·경모루·보물각이 있고, 삼태사의 후손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냅니다. 이곳에 전하는 고려 시대 유물 12종 22점(주칠탁잔·고견포·관·신·부채·동인·교서 등)은 보물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로 지정되어 있지만, 어느 유물이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세거지와 입향조 장의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은 안동 장씨를 시조 장정필, 입향조 장의의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로 소개합니다. 장의는 장사길의 5세손으로, 조선 초 불안한 정국을 피해 선대의 고향 안동으로 낙향해 시조 묘소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대표 세거지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춘파)와 금계리이며, 장흥효의 후손은 성곡리에 종가를 비롯해 40여 호가 산다고 소개됩니다. 그 밖에 신아일보는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궁천리, 충남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입석리를, 나무위키는 경북 예천군, 경남 남해군, 충북 진천군, 강원 홍천군, 경기도 안산시 등을 집성촌으로 소개합니다. 2000년 통계에서는 서울 20,784명, 경기 18,225명, 부산 6,752명, 인천 5,806명, 충남 5,278명 순이었습니다.

서후면의 유적

서후면 성곡리에는 장태사(장정필)의 묘소와 재사가 있고 봉림정사가 있으며, 금계리 춘파에는 경당고택, 광풍정과 제월대가 있습니다. 장흥효를 제향한 경광서원도 이 학맥과 이어집니다. 영양 석보면 원리 두들마을의 석계고택은 장계향이 살던 집으로 소개됩니다. 파주시 금촌에는 화산부원군 장사길의 묘가 있고 문중이 시향을 올린다고 합니다. 방문 전에는 개방 여부와 위치를 안동시나 대종회에 확인하세요.

파(派)

위키백과는 화산군파·부령군파·예산군파·청송군파·지례백파·진천군파·이천백파·울진부원군파·희양공종파 등 주요 파와 약 60개의 소파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신아일보는 화산군파·부안군파·예산군파·청송군파·지예백파를 주요 파로 소개해, 부령과 부안, 지례와 지예처럼 표기가 엇갈립니다. 각 파의 파조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고, 파별 소개는 아래 카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급제와 인물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51명(문과 4, 무과 10, 사마시 20, 역과 16, 의과 1)이라고 신아일보가 소개합니다. 위키백과는 문과 급제자로 장세량·장정식·장제한·장중인을 적고 있습니다. 중세의 대표 인물은 장사길·장철·장사정, 조선의 장흥효·장계향이며, 근현대에는 장기려·장준하·장만영·장가용·장향숙이 소개됩니다. 한 기사는 시조의 13대손 장려(張儷)가 화령백에 봉해지고 문하우정승에 올랐다고 하나, 위키백과는 장사길의 아버지를 장려(張侶)로 적는 등 가계 표기가 갈립니다.

대종회와 종친회

안동장씨중앙대종회가 위키백과와 나무위키에 중앙 종친회로 소개되고, 위키백과는 공식 사이트를 andongjangc.com으로 안내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접속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아일보(2013)는 당시 대종회 회장으로 장명기 씨를 소개했으나 현재 직책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연락처는 최신 정보를 직접 확인하세요.

항렬에 대하여

나무위키와 위키백과에는 31세부터 54세까지의 항렬자 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31세는 재(載)·규(圭)·기(基), 32세는 선(善)·진(鎭)이고 40세는 열·엽·환·훈 계열, 45세는 한·화·엽 계열이라고 소개됩니다. 그러나 36세를 어떤 자료는 현(鉉), 1989년 기사는 현(玹)으로 적는 등 표기가 갈리고, 위키백과의 원문 표도 깨져 있어 세대별 대응을 옮기기 어렵습니다. 파와 지역에 따라 실제 사용이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시조와 삼태사 가문 비교

같은 삼태사 가문인 안동 권씨, 세도정치로 이름난 신(新) 안동 김씨와 견주어 안동 장씨는 크게 번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주로 안동 주변에서 세거하며 남인 가문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서술하고, 안동 장씨를 고려·조선 개국공신 가문으로 소개합니다. 이 평가는 하나의 서술일 뿐이므로 참고만 하세요.

인구

1985년 15,086가구 64,814명, 2000년 25,552가구 83,961명, 2015년 39,939명입니다. 2015년 수치가 줄어든 까닭은 조사 방법의 차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장씨는 張을 쓰는 비중이 가장 크지만 같은 본관 이름이라도 한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이 안동인지, 인동·덕수 등 다른 장씨는 아닌지 족보로 확인하세요.

우리 안동 장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안동)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안동 장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 안동 장씨 시조 계보도

안동 장씨 시조 계보도태사 장정필 → 장사길·장사정 · 경당 장흥효 → 『음식디미방』 장계향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안동 장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시조 계보도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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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씨 종친회

안동 장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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