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장씨의 시조, 930년 고창(병산) 전투에서 태조 왕건을 도운 안동 삼태사의 한 사람, 시호 충헌

| 생몰 | 888(전승) |
| 시대 | 고려 초·후삼국 |
| 본관 | 안동 장씨 |
장정필(張貞弼)은 안동 장씨의 시조로 모셔지는 인물입니다.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고, 『고려사』에는 '장길'로 나옵니다. 자는 영보(寧父), 호는 포음(圃蔭), 시호는 충헌(忠獻)이라고 전합니다. 『안동장씨대동속보』를 인용한 자료들은 888년(신라 진성여왕 2)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 장원(張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적습니다.
출신과 도래 시기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글은 다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신라에 왔다가 열여덟에 당나라로 건너가 문과에 급제하고 이부상서를 지낸 뒤 돌아왔다고 하고,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은 9세기 말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와 강릉과 안동에 머물렀으며 만년에 안동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합니다. 신아일보 기사는 892년에 아버지와 함께 들어왔다고 적습니다. 모두 족보 전승에 가까운 이야기라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알려진 대목은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 병산 전투입니다.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고려 태조 왕건의 군대가 맞붙었을 때, 고창의 호족 김선평·권행과 함께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왕건을 도와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공으로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에 올랐다고 전하고, 『고려사』 계통의 설명은 김선평이 대광, 권행과 장정필이 대상(大相)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왕건은 고창군을 안동부로 올리고 장정필에게 안동을 본관으로 내렸다고 하며, 안동 장씨는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장정필은 김선평(안동 김씨 시조), 권행(안동 권씨 시조)과 함께 안동의 삼태사로 받들어집니다. 세 사람을 모신 안동 태사묘(북문동)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이고, 이곳에 전하는 고려 시대 유물 12종 22점은 보물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입니다. 후손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며, 세 가문의 계보는 안동 장씨 시조 계보도와 안동 김씨·안동 권씨 항목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장정필을 통일신라의 해상왕 장보고의 현손(고손)으로 보는 전승이 있다고 전해지지만, 신아일보는 장보고 혈족의 이주를 입증할 사료가 부족해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적습니다. 중국 절강성 출생설, 신라에서 귀화한 인물이라는 견해 등 출처마다 설명이 달라 이 항목에서는 단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장씨'라도 인동 장씨·덕수 장씨와는 시조가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장태사(장정필)의 묘소와 재사가 있다고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이 소개합니다. 정확한 묘역 현황은 대종회에 확인하세요.
후손은 안동 장씨로 이어집니다. 시조와 고려 말 장사길 사이의 세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아, 족보트리의 시조 계보도에서는 점선으로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