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 부산복음병원 설립자, 청십자의료보험 창설,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한국의 슈바이처'

| 생몰 | 1911 ~ 1995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안동 장씨 |
장기려(張起呂, 1911~1995)는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입암리에서 태어난 외과 의사입니다. 아버지는 장운섭, 어머니는 최윤경이며, 위키백과는 본관을 안동으로 소개합니다.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마친 뒤 1940년 나고야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평양 연합기독병원 외과 과장과 평양의과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1950년 12월 월남한 뒤 부산에서 제3육군병원에 근무했고, 1951년 부산 서구 암남동에 복음병원(지금의 고신의료원의 전신)을 세워 피난민과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료했습니다. 서울대 의대와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학장을 지냈고, 1959년에는 간 대량 절제술에 성공해 우리나라 간 외과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훗날 그날(10월 20일)을 기려 '간의 날'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1968년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 청십자의료협동조합(부산 청십자의료보험)을 만들고 이사장을 맡아, 국내 의료보험제도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과 제1회 호암상 등 여러 상을 받았고, 1995년 12월 25일 서울백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고,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립니다.
복음병원은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시작되었고, 장기려는 1951년부터 1976년 6월까지 초대 원장을 맡았습니다. 이어 1968년 설립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은 낮은 보험료로 함께 의료비를 나누는 방식으로, 뒤에 전국 의료보험제도가 자리 잡는 데 앞선 실험이었다고 평가됩니다.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도 세웠습니다.
장기려는 안동 장씨 가운데 현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 꼽히며, 안동 장씨 관련 글에도 대표 인물로 자주 오릅니다. 같은 '장씨'라도 인동 장씨와는 별개이니 본관을 족보로 확인하세요. 아들 장가용도 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묻혀 있습니다.
배우자는 김봉숙, 아들로 장학용·장가용(외과 의사)이 있다고 합니다. 장가용의 아들 장여구도 외과 의사로 일한다고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