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에 가담한 회군공신, 조선 개국공신, 정사공신 2등, 화산군에 봉해진 무신, 시호 희양
| 생몰 | 1418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안동 장씨 |
장사길(張思吉, ?~1418)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무신으로, 압록강 하류 의주의 토호 집안 출신입니다. 위키백과는 아버지를 의주상만호 장려(張侶, 『고려사』 표기)로, 안동 장씨 쪽 자료는 의주만호 장열(張烈)로 적어 이름 표기가 갈립니다. 아우는 장사정이고, 시호는 희양(僖襄)입니다.
1382년 호발도가 의주를 침입했을 때 아버지·아우와 함께 맞서 싸우다 화살에 맞았고, 이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주만호가 되었다고 합니다. 1389년 밀직부사에 올랐고, 1390년 위화도 회군에 가담한 공으로 회군공신이 되었으며, 같은 해 이지란(두란)과 함께 서해도에서 왜구를 진압했습니다. 1392년에는 정몽주가 제거된 뒤 이방원의 명으로 군사를 이끌고 이성계의 사저를 경비했다고 전합니다.
조선이 개국한 1392년에는 개국의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고 화령군에 봉해졌고(자료에 따라 개국공신 1등으로 소개), 1398년 정안대군(이방원) 편에 서서 정사공신 2등에 올라 영가군에 봉해진 뒤 화산군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참찬문하부사·우군도총제·참찬의정부사 등을 지냈고 1418년 10월 3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용맹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까지 닿는 긴 수염을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장사길과 그의 아들 장철이 화산군에 봉해진 데서 안동 장씨의 대표 계열인 화산군파가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안동 장씨는 안동 삼태사의 하나인 장정필을 시조로 하면서도, 이처럼 고려 말·조선 초 개국공신을 낸 집안으로 소개됩니다. 아우 장사정도 개국과 정사공신에 올랐습니다.
실록에는 기첩 복덕의 양인 신분 문제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태종 앞에서 사죄한 일, 명나라 황제의 성절 조하에 나가지 않아 파직되었다가 복직한 일 등이 전합니다. 공신으로서의 공과 함께 이런 비판적 기록도 함께 남아 있다는 점을 알아 두면 좋습니다. 위화도 회군의 배경은 이성계 항목을 참고하세요.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 있고 안동 장씨 문중이 이곳에서 시향을 올린다고 서울이코노미뉴스가 소개합니다. 위키백과에는 묘소 기록이 없어, 정확한 위치는 문중에 확인하세요.
아들 장주(張住), 딸 순혜옹주 장씨, 손자 장자은(張字殷) 등이 위키백과에 소개됩니다. 안동 입향조 장의는 장사길의 5세손으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