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張俊河

학병 탈출 후 광복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사상계』 창간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건국훈장 애국장(1991)

장준하
장준하 · 퍼블릭 도메인(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명시) · Wikimedia Commons
생몰1918 ~ 1975
시대근현대
본관안동 장씨

생애 약력

장준하(張俊河, 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입니다. 본관은 안동이며, 할아버지 장윤희는 기독교 장로이자 개화 인사였고 아버지 장석인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생년은 호적(1915년)과 일본군 명부(1918년 7월 20일) 등 자료마다 달라 위키백과는 1918년 8월 27일로 적습니다.

1943년 일본군에 학병으로 입대했다가 1944년 7월 7일 중국 쉬저우에서 김준엽 등과 탈출해, 6천 리를 걸어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담은 자서전이 『돌베개』(1971)입니다.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미국 전략첩보대(OSS)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고, 1945년 11월 김구 등과 함께 귀국했습니다.

1953년 잡지 『사상계』를 창간해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종합 교양지로 키웠고, 1962년 막사이사이상(언론문화)을 받았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한일회담 반대, 사카린 밀수 규탄, 1974년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이끌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당국은 추락사로 발표했으나 가족과 시민사회는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서훈과 기림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제1회 한신상, 1999년 금관문화훈장도 추서되었습니다. 파주 탄현면의 장준하공원(2012년 8월 건립)에 묘역이 있습니다. 1974년 긴급조치 위반 판결은 2013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소개됩니다.

평가의 다양한 목소리

긍정적으로는 『사상계』를 통해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잡지 언론인이라는 평가가 많고, 함석헌은 그의 두려움 없는 기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편 5·16 직후 권두언이 쿠데타를 사실상 지지했다는 비판(다만 필자가 장준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최남선 추모호 등에 대한 비판도 있어 평가가 하나로 모이지는 않습니다.

묘소

처음 경기도 파주 광탄면 나사렛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2012년 8월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의 장준하공원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후손

배우자 김희숙과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고, 장남 장호권이 아버지의 사망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다고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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