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수필가·번역문학가, 필명 초애, 시집 『양』『축제』『유년송』
| 생몰 | 1914 ~ 1975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안동 장씨 |
장만영(張萬榮, 1914~1975)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배천군에서 자란 시인입니다. 위키백과는 본관을 안동으로 소개하며, 필명은 초애(草涯)입니다. 배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일본 도쿄의 영어학교에 다녔으나 중퇴했습니다.
1932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양(羊)』, 『축제(祝祭)』, 『유년송(幼年頌)』을 냈으며 수필집으로 『그리운 날에』가 있습니다. 1956년에는 번역문학가로, 1958년에는 수필가로도 데뷔해 시·번역·수필을 두루 썼습니다. 1968년에는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습니다.
1973년 급성 췌장염의 합병증으로 쓰러져 2년간 투병하다 1975년 10월 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서에 따라 향년이 61세 또는 62세로 달리 적혀 있습니다. 평가 항목이나 구체적 작품 평은 이번에 확인한 자료에 없었으므로, 시 세계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문학 사전류와 전집을 참고하세요.
장만영은 1930년대 초 등단한 이래 시를 중심으로 번역과 수필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같은 안동 장씨 가운데 문학 분야의 대표 인물로 꼽히며, 안동 장씨 관련 소개글에서 현대 인물로 함께 언급됩니다. 구체적인 문단 활동과 출판 사업 등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